[와이뉴스]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시대의 흐름은 강하다. (중략) 희망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포기하면 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거대한 사회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 홍성규 소장 인터뷰 중
화성에서 나고 자랐다. 노동과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면서 수차례 선거에 출마했다.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눈앞에 둔 나이. 지역과 사회 변화 발전을 위한 힘찬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앞선 3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노동인권센터에서 홍성규 소장을 만나 세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독자께 소개 부탁. 주로 인권 노동 관련 활동을 해오고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활동 시기, 계기 등.
이곳(화성)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다.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발안중학교를 나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저를 키워주었던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졸업하고 떠났던 고향에 2008년에 돌아왔다. 약 20년 만이었다. 그때부터 쭉 태어난 집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화성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됐고 선거가 끝난 그해 가을에 바로 이곳에 ‘화성노동인권센터’를 만들어 지금까지 약 10여 년 동안 임하고 있다.
떠날 때만 해도 ‘농촌사회’였는데, 어느덧 화성은 이곳 서부지역도 공장이 빼곡한 노동자밀집도시가 됐다. 외국인노동자들도 많고.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 노동자라고도 부르고 서민들이라고 부르는 시민들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사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 화성노동인권센터 소개(창립 계기, 시기, 활동 등)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2010년 가을에 만들었다.
사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노동운동을 해보기 위해 2008년에 내려왔을 때부터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했다. 2년 동안 5군데 정도의 업체를 전전했다. 그러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약간은 뜻하지 않게 화성시장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러한 이유로 ‘화성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비정규노동센터’가 곳곳에서 유행하던 때였는데, ‘인권’이란 말을 꼭 넣고 싶었다. 노동을 넘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인권문제 또한 함께 나누고 싶었다.
화성노동인권센터의 주요 활동은 ‘노동, 인권’ 등의 분야 곳곳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불러만 주신다면 전국 각지를 찾아 교육을 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지역사회에서 본격적인 ‘노동상담’ 등을 아직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임으로 근무하는 노무사님도 모시면 좋은데 재정여건상 아직은 어렵다. 현재 노동상담은 경기비정규지원센터와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 이석기 전 의원(제19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비례) 구명 관련 활동 계기
이석기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총선 당시였다. 이석기 의원은 그때 통합진보당 비례후보로 출마했었다. 총선을 마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지금의 정의당과 분당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 해인 2013년 3월부터 중앙당 대변인으로 일하게 됏다. 이때 국회에 있던 이석기 의원과 조금 더 만나게 될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가 8월 말에 갑자기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대변인이니 가장 일선에서 대응해야 했고 이후 2014년 12월에 급기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석기 의원도 2013년 9월부터 감옥에 갇혀 무려 8년 3개월만인 2021년 12월에 가석방으로 나왔다.
대변인이었다는 입장에서, 저 자신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라는 상황에서 ‘구명 활동’에 함께 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가 지역마다도 꾸려졌는데 ‘화성구명위(준) 집행위원장’을 쭉 맡아왔다.
■ 이석기 전 의원이 ‘내란을 음모했다’는데, 관련 정황 설명 부탁드린다.
이게 참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다.
모든 사건의 출발은 2013년 5월에 있었던 이석기 의원의 강연회였다.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회였고, 저도 당연히 현장에 함께 있었다. 이 강연회에 오래 전부터 국정원에서 프락치로 고용한 자가 들어와 녹취를 하고 뻥 터뜨려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이라 칭한 거다.
그 날의 강연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당시에는 남북관계가 엄청 심각했었다. 북에서는 핵무기 완성을 눈앞에 뒀다고 했고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강연의 내용 중에는 ‘혹여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라는 것도 있었는데, 여기서 ‘전쟁’이란 표현 때문에 난리가 난 거다. 이게 그렇게 문제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대법원까지 가면서 법적으로는 ‘내란음모’는 무죄이나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기이한 판결이 나오면서 이석기 의원은 8년이 넘도록 감옥 독방에 수감돼 있어야 했다. 촛불혁명 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도 거의 5년을 갇혀있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당시 박근혜 독재정권에 가장 용감하게 앞장서 저항했던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말살하기 위한 ‘정권과 국정원의 음모’라고 봐야 할 것이겠고, 지금까지도 현안인 이유는 촛불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끌어내렸는데도, 이 사건은 여전히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전혀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때문이다.
■ 이 전 의원은 왜 사면복권 되어야 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무엇보다 앞서 ‘내란음모사건’을 말씀드린 것처럼, 박근혜 독재정권에 가장 앞장서서 저항했다고 꾸며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촛불항쟁과 탄핵을 통해 ‘박근혜 독재정권’은 단죄를 받았다. 그런데 ‘이석기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게 과연 상식적인 일인가.
촛불혁명 후 바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 첫 시작은 억울하게 갇힌 양심수들부터 모두 석방 및 사면복권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도 가장 큰 수혜자였던 문재인정권은 임기 5년 내내 그대로 잡아두었다. 박근혜와 뭐가 다른가 물어봐도 아마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작년 말 가석방도 정말 분노스러운 과정이었다. 억울한 정치적 희생양 이석기 의원은 슬그머니 ‘가석방’으로 내보내더니,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가해자였던 박근혜는 ‘사면복권’을 시킨다. 말 그대로 가석방은 임시로 석방시키는 거고, 사면복권은 죄를 모두 없애고 모든 권리를 다시 복원해주는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석기 의원은 가석방 과정에서 ‘전자발찌’도 채웠다. 투표도 못하는 상황이다. 박근혜는 이어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당당히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이석기 전 의원은) 내년에 형기가 만료되더라도 이후 10년 정도 정치적 활동은 계속 금지되는 상태다. 정치인에게 정치를 금해놓고도 여기에 과연 ‘석방’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인가.
8.15를 얼마 안 남겨놓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라도 지금 당장, 이재용이니 신동빈이니 경제인 운운하기 전에 이석기 의원부터 바로 ‘사면복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게 최소한의 정의이자 공정, 상식 아닌가.
■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정황 설명 부탁 드린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미쳤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은, 전 과정 자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것이며, 선거 때마다 지지를 못 받으면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 5% 이상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던 원내 제3정당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빌려 강제로 해산시켜 버렸던 것이다.
설명해드릴 말은 정말 많지만, 딱 2가지 정도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진보당 자체를 ‘이석기 의원의 개인정당’ 정도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내란음모사건 자체도 말이 안 되지만, 설사 그들의 논리대로 따라간다 하더라도 이게 어떻게 ‘정당 해산’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서 어떤 의원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여 그 전체 정당 자체를 해산시켜버리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겠는가.
둘째, 그러다 보니 억지로 끌어왔던 것이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아시다시피 통합진보당은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에서 쭉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다. 그동안 강령도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 그럼 그때까지 15년 동안 문제가 있는 것을 몰랐다가 박근혜 정권 때 갑자기 알게 됐다는 것인가. 아무리 강령을 들여다 봐도 문제를 찾을 수 없으니 ‘활자화된 강령 이면에 있는 그 불순한 정신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법인가. 당시에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부활했다고 말들이 많았지 않은가.
이런 과정을 거쳐 통합진보당이, 2014년 12월 19일, 그러니까 2년 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딱 그 날에 해산결정이 났다.
이 모든 과정의 다 진상을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 이석기 전 의원 활동 관련, ‘공산당 낙인’이 붙는다. 관련 견해는 어떠하신지. 아울러 대한민국의 사상 자유 관련 견해도 듣고 싶다.
차라리 ‘공산당’과 ‘빨갱이’의 정의를 정확히 하는, 그런 토론이라도 좀 공식적으로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등학생 때 (저서) ‘공산당 선언’은 대입 논술 필수교재로 다뤄지는 데 반해, 대학교 가서 (같은 책)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정말 코미디 아닌가. 지난 70여 년 동안 꾸준하게 ‘국가보안법 폐지’가 요구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초보적인 민주주의 사회’ 축에도 아직 못 낀다는 것이다. 개별 국민의 머리 속까지 국가가 검열을 하겠다는데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이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 대한민국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키나 한 일인가. 민주노동당부터 지금의 정의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들 보고 ‘공산당이다 빨갱이다’ 말들도 많은데, 이 정당들 강령 갖고 유럽으로 가면 중도 축에도 못 들어간다. 중도우파 정도 될 듯하다.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허상을 갖고 싸우고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공동대변인도 맡고 있고 ‘국가보안법폐지 교육센터’ 교육위원도 하고 있는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보안법’부터 당장 폐지해야 한다.
■ 이 외 더 전하고 싶으신 말씀, 향후 활동 계획 등.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일단 오늘의 주제였던 ‘이석기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관련해서는 신속하게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지난 촛불혁명에서도 보셨듯, 이 엄혹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곳곳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많은 분이 낙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시대의 흐름이 더 강하다고 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원외정당이었던 진보당의 깜짝 놀랄 만한 ‘제3당’으로의 약진은 그 소중한 신호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노동, 농민, 여성 등 각계에서 치열하게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오면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식했던 것은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면서 그동안 7차례에 걸쳐 선거에 출마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지방선거도 꼭 나가고 싶었는데, 앞서 언급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이 사건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선거 직후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매번 모든 선거가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겠지만 내후년 총선은 무척 중요한 선거가 되리라 본다. 이번에 ‘진보당 화성시위원회 위원장’으로 출마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정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어려운 험지이기도 하나 동시에 꼭 돌파해야 할 곳이기도 한 이곳 수도권에서, 특히 수도권에서 대표적인 노동자 집중지역인 이곳 화성에서 ‘진보정치의 멋진 승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희망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포기하면 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거대한 사회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함께 해 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