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뉴스] 독립운동가 집터와 옛 유허지, 송산 3·1운동기념공원, 사강경찰관 주재소 터, 사강교회 옹벽, 송산초등학교 인근 등이 있다.
사강 시장 내 왕광연 집터를 비롯해 오광득 이윤식 차경현 민용운 홍명선 박춘흥 문상익 홍효선 홍승한 홍복용 김명제 이경집 홍준옥 안순원 집터 등이 있다.

왕광연 집터는 독립운동가 왕광연이 출옥 후 살던 곳으로, 왕광연은 마을 사람들과 사강리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노구치 고조를 추격 처단하는 등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됐다. 이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19년 3월 26-28일 송산면 사강장터 중심으로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 일로 175명이 검거되었다. 일제는 사강리, 봉가리, 육일리 등 인근 마을에 방화 약탈을 자행했다.
이 중 송산농협은 노구치 처단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만세운동 당시 일제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를 처단했다고 한다.

3월 28일 송산면 사강시장 장날을 맞아 1천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자 수원경찰서 소속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며 탄압했고,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돌과 몽둥이로 맞서 노구치 순사를 처단했다.
일제는 이 사건 보복으로 화성지역에 대규모 군경을 투입해 진압했으며 이은 4월 15일 제암리와 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이어진다고 전한다.

이 날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는 보병을 이끌고 순사보 조희창, 일본인 사사카(佐板)를 앞세워 제암리 학살 후 곧바로 팔탄면 고주리로 넘어갔다. 고주리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 김흥렬과 그의 동생 김성열 김세열, 김성열의 아들 김흥복, 김세열의 아들 김주남 김주업 등 총 6명을 학살하고 3일 동안 불에 태웠다고 전해진다.
-자료 참조: 화성시, 동북아역사재단 등
※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