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 편집국장 이영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번지 일대 두물머리. 취재차 방문한 그곳은 한 시간도 채 안 돼 흠뻑 빠질 만한 멋진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지는 여름강의 희뿌연 안개와 주위로 우거지는 푸른 산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야말로 관광지로 손색없는 경관이었다. 두물머리 입구부터 두물경 표지석까지 4대강 사업으로 정돈된 일대를 거닐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어떻게 떠났을까’였다.

이곳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포함된 건 2009년 5월. 3년 6개월여의 긴 투쟁이 있었다. 평화롭디평화로운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11농가. 그들이 목숨 걸고 버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맞다. 이곳은 국유지였다. 1973년 12월 인근 팔당댐이 준공되고 나서부터 정부는 농민들에게 근방 땅을 빌려주고 소정의 임차료를 받으며 농사를 짓게 했다. 상수원보호구역과 그린벨트 지역으로 같이 묶여 그들은 엄청난 단속 속에 진한 농약을 친다거나 자신의 주택 개보수조차 그래, 그들이 말하는 ‘개집 하나 짓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곳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유일하게 농사, 그것도 유기농이었다. 그렇게 양수리 두물머리를 한국 유기농의 발상지로 탄생시켰다. 흙과 사람과 물,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쫓겨났다. 두물머리 일대에서 유기농을 경작하던 11농가의 처절한 몸부림도 정부의 최후의 철거용역과 경찰 세력 등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중장비, 철거용역 등과의 충돌이 있었고 업무·공무집행 방해 명목으로 경찰서에 출두하거나 법원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재판비용과 벌금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5개 농가에 고스란히 돌아왔다.

같은 양평군민들조차도 “양평 발전을 저해한다”며 그들을 규탄했다. 마을 사람 누군가는 흐름을 따라 정치판에 나설 기색도 비쳤었다는 풍문도 돌았다나.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

떠나면서도 그들은 두물머리의 생태를 걱정했다. 생태학습장을 조성해 이곳의 자연만큼은 훼손되지 않게 해달라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청이었다.

빚은 엄청났다. 농가당 최소 3억-11억원 가량의 부채를 떠안고 양평군 내 다른 곳에 땅을 샀다. 다른 곳으로의 이주는 사실상 힘들었다. 다시 땅을 일궈 지주가 돼보겠노라고 서글픈 다짐을 했으리라.

이 다짐은 어려운 농가 현실 앞에서 오래 가기 힘들었다. 통계청 추산 2010년 농가 평균 소득 3천212만 1천원 이 중 순소득 2천304만 4천원, 2018년 농가소득 평균 4천206만 6천원, 순소득은 2천987만 3천원이다. 이러한 속에서 연금리 1.5-1.8% 달하는 금액 이자도 대출받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연 수천만 원에 달하는 원리금 상환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다.

수막농법. 연평균 15℃를 유지하는 지하수로 비닐하우스 사이에 막을 형성해 열 유출을 막는 농법이다. 이는 겨울철 최저비용으로 농사지을 방법이었으나 이주한 곳에서는 물이 멀어 사용하기 힘들다.

가장 젊은 층이 50대 초반. 이주당한 농가의 평균 연령은 50-70대. 이 중 다수가 60-70대다. 이미 원리금 상환을 하지 못해 파산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농가도 생겨났다. 다른 농가도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을 구해 이자를 갚고 있는 상황.

땅이 좋아 땅에 살고 농사가 좋아 농사를 짓고,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인데 강한 화학 농약은 쓰기 싫다며 친환경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사람들. 이들이 현재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도 현실적으로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원리금 상환이 2021년 말로 다가오기 때문.

경기도, 청와대를 비롯해 여러 곳에 문의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원리금 상환 기일을 늦춰주겠다 내지는 이율을 낮춰 주겠다’는 조삼모사식 답변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앞선 3월과 4월 해당 지역 도의원의 도정질의에 해당 유기농가 지원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못을 박았다. 양평군 관계자는 당시 4대강 사업을 진행했던 공무원 부서와 서류 등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그 어느 곳에도 어려움을 호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

이들이 원하는 바는 무조건적 빚 탕감이 아니다. 지금 농사짓고 있는 땅을 경기도가 다시 사고 재임대 혹은 다시 사는 거로 끝. 그들의 농지를 또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조금 더 땅값이 싼 다른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들이 빚을 갚아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갚고 싶다고 말한다.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뿐. “빚만 없으면 살겠다”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리라.

현재 경기도의 태세로 볼 때 빚 탕감은 언감생심 말도 못 꺼내겠지마는, 혹여 만약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 해도 앞서 밝혔듯 최소 50대 이상의 농민들이 새로운 농지를 개간해 정착하기까지는 또다시 10년이 걸린다.

그래, 국유지였다. 혹자는 그리 말하더라. “원래 국유지였으니 임차인이 나가는 건 당연지사고 쫓겨난 농가의 피해보다 더 큰 국민 소득을 위해 희생할 수도 있지 않으냐, 그들이 빚을 졌으니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일견 틀린 말은 아니나, 국유지였으므로 나라가 소수의 11농가를 강제적으로 내쫓으면서까지 얻으려고 한 그 큰 소득은 대체 무엇이었으며 백발 양보해 그들의 큰 뜻에 예기치 못한 흠결이 생겨 4대강 사업의 합리성이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더라도, 지금 억대의 빚을 등에 진 농민은 시름을 놓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고.

이재명 지사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부터 주창해온 청년 수당이나 교복 무상 지원 등은 별도의 예산을 책정한 것이 아닌 기존 예산을 절약해 만들어 시행한 분명 합리적인 정책이었다. 물론 4대강 사업이 그의 도지사 재임 시절 일어난 사안은 아닐지라도 현행 법률로 농민들을 지원할 방안이 전무하다면, 적어도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거친 손을 잡으며 그들을 포용할 정책 연구에 힘을 돕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農者는 天下之大本이다. 주체가 누가 됐든, 하늘 아래 큰 근본인 농민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