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예부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삼남의 물화(物貨)가 모이는 집산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으로 지난날 안성장은 ‘조선 시대 3대 향시(鄕市)’ 가운데 하나로 불리었다.
『중보문헌비고』*에는 읍내장이란 이름으로 2일, 7일 장이 개시됐다고 기록돼 있다. 1703년(숙종 29년) 『비변사등록』에 “안성 일로는 삼남의 요충지로 공장과 장사꾼들이 모여들고”라는 기록으로 당시에도 안성장이 번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안성장은 서울보다 두 세 가지가 더 난다”, “안성 지역에는 이일, 칠일 안성장에 팔도물건이 널려 있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갖가지 공예품과 객주들이 북적이며 성황을 이뤘다.
1794년 작성된 『부역실총(賦役實總)』 기록을 보면 안성장에서 걷은 장세가 720냥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많았다. <영조실록>에는 안성장의 규모가 서울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 물화가 모이고 도적떼들도 모여든다는 기록이 전한다.
오늘날에도 안성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현대적인 편리함과 쾌적함, 전통시장의 정겨움과 멋스러움이 공존한다. 또 ‘7080 추억의 거리’를 조성해 작은 영화세트장 같은 분위기도 자아낸다. 독특한 감성과 시장 특유의 생동감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코스이기도 하며 타 도시에서도 볼거리를 찾아 오는 코스로 꼽힌다.
과거의 맥을 이어 2일, 7일에 오일장이 서며 다른 일자에도 상설시장이 열린다. 정기시장에 장돌림이 중앙시장 주변에 Y자 형태로 구성되나, 두 개의 시장이 이어지다 보니 상설시장만으로도 규모가 있는 편이다.
* 중보문헌비고: 갑오개혁 이후의 자료들을 보완하여 한국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분류한 책
* 비변사등록: 조선조 중·후기의 최고의결기관이었던 비변사에서 처리한 사건을 등록해 광해군 9년부터 고종 29년까지 12왕조 280여년 간의 기록이며 273책으로 구성된다.
* 부역실총: 정조 18년(1794) 전국 각지의 백성이 부담하는 물품과 수량을 조사해 정리한 호조 소관의 통계 서적
* 호조: 조선시대 중앙행정기관 중 하나. 재정, 회계, 인구조사, 세금, 경제 등의 업무를 담당
-자료 참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메모리 등
※ 촬영: 202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