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기_어때] [61] 안성시_바우덕이 사당

 

[와이뉴스] 김암덕(金巖德 바우덕이)은 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천재 예인이다. 

 

15살에 사상 최초 여자로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었다. 남사당패는 규율이 엄격하여 우두머리를 '꼭두쇠'라 부르며 받들었다고 한다.

 

 

남사당패는 본디 조선의 창건과 함께 유교 중심 사회로 변하며 소속이 없어진 채 전국을 떠돌게 된, 고려의 사찰에 적을 두었던 예인들이었다. 


남사당놀이는 주로 남녀차별과 양반의 부도덕성을 다뤘고 풍자를 통해 힘없는 백성의 마음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흥겨운 풍물놀이, 힘겨운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다양한 놀이로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으며 그 전통을 잘 보존해 와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선정됐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다섯 살 무렵인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15세 되던 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해 새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됐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인부들을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공연으로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일설에는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의 공연으로 경복궁 중건이 원활하게 진행됐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름을 떨친 바우덕이 덕에 안성 남사당패는 김암덕의 이름을 딴 '바우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개척한 첫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안성시는 안성 남사당패의 본거지를 기념하고 꼭두쇠였던 바우덕이의 넋을 기리고자 2005년 9월 바우덕이 사당을 건립했다. 안성 남사당패 근거지였던 청룡사 맞은편에는 아직도 남사당 마을이 있다고 한다. 

 

 

-자료 참조: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경기도메모리, 경기문화재단, 안성시 등
※ 촬영: 202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