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기자들의 필독서’ <말길과 정치>

언론학 박사 출신의 정치인이 그려낸 언로와 정치에 관한 고찰
거의 전대미문 방대한 참고문헌 글쓴이의 치열한 연구가 돋보이는 ‘결실’

 

[와이뉴스] “사적 공간이 외부 세계로 활짝 열리며 내밀성의 공간이었던 가정은 이제 전시의 공간이 될 것이고 더 빠르고 더 많은 소통과 소비의 공간, 나아가 감시와 통제의 공간이 될 것이다.”

 

“저널리즘은 급박해지고 심층적인 접근법은 생략된 채 속도 경쟁과 클릭 경쟁에 매달려야 한다. 시, 분, 초를 더욱 잘게 분할하고 분할된 시간의 틈 속에서 재빠르게 자신의 기사와 정보를 노출해야 한다. 숙독(熟讀)이 아닌 속독(速讀) 저널리즘은 온라인의 허위조작정보나 극도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들과 결합하여 사람들의 즉각적인 감정을 동원한다.”

             - <말길과 정치> 중에서

 

언론학자이자 정치인 출신의 이영주 박사가 최근 새 책을 발표했다. 언론학 박사이며 오랜 기간 대학 강단에서 섰던 경험으로 바탕으로 그간의 언로(言路)와 한국 정치에 관한 고찰을 가감 없이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냈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뒷부분의 방대한 참고문헌들이다. 일반 사회과학 서적들의 네다섯 배는 족히 될 듯한 분량은 글쓴이의 치열한 연구와 준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말길과 정치>는 말과 글, 이미지와 영상 등이 다양한 형태로 흘러 다니는 ‘말의 길’(言路)과 정치에의 성찰적 글들을 모은 책이다. 한국 사회의 언론과 미디어, 디지털 문화와 정치가 노출하고 있는 문제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고 변화의 방향성을 제안한다. 더불어서, ‘8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치의 취약성을 다루고 언론과 디지털 문화의 어두운 면을 조망한다. 다른 한편으로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말길과 정치의 발견을 촉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담론의 꾸준한 부상, 미국의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및 경제적 불황 상황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당들의 실패에 기반, 2016년 영국 브렉시트가 중심이 된 극우정치의 강력한 분출, 노동당을 거부하는 노동자, 난민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독일의 상황 등 미국과 유럽이 보이는 극우 정치의 상황 등을 열거 분석하며 이는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다른 지역에서 펼쳐지는 같은 이야기”라고 평한다.

 

또 하나, 넷 공간에서의 ‘흥미성’을 전한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이고 의견을 발표하며 서로 논쟁하고 충돌을 벌이는 공간, 여전히 접근이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며 사회적 규범과 제도적 규제 안에서 운영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구와 욕망, 감정과 생각, 취향과 성향 등을 자유롭고 대담하게 표현하는 공간으로 ‘날 것’의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우리의 피부가 된 듯한 디지털 환경”이라 규정한다.

 

디지털 기술은 발전하고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 등 수많은 기술 환경은 심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비판적 접근 없이 기업에 자신의 가족, 지인, 주변을 모두 공개한다는 것.

 

저자 이영주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석사,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2017년까지 대학에 재직하며 주로 비판언론학과 문화연구의 주제들을 강의하고 연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과 서울과학기술대 위험정보사회연구단 연구원,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연구교수를 거치면서, 또 지금도 한국사회의 미디어 개혁과 사회 변화를 둘러싼 고민을 풀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실패하는 공공커뮤니케이션, 위험한 정부에 대한 시론적 고찰>, <종합편성채널 저널리즘의 비판적 재조명>, <사이버공간에서의 역사의 내전화>, <마르쿠제와 랑시에르의 정치미학에 대한 이론적 탐색> 등 수십 편의 학술논문과 『경계를 넘어선 예술』(공저), 『디지털 시대 공영방송의 좌표와 개혁』(공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 이론과 사상』(역서) 등 다수의 저작에 참여했다. 문화연대와 언론인권센터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개혁과 문화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담론들을 이끌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은 학술서도 이론서도 아니다. 각 장은 논리적 순서나 유기적 구성력에 기초해 배열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떤 장을 읽든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구성”이라고 전했다. 글에 제시된 대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배려하는 배열이 아닐까 한다.

 

“한국 사회가 조금 덜 서두르고, 사실이나 진실의 가치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극단적 혐오와 적대가 아닌 공존과 협력의 관계를 추구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과 평화, 인권과 생태, 비차별과 연대의 가치에 기반한 인간애의 지평이 넓어지는 시간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쓴 <말길과 정치> 가히 기자들의 필독서라 할 만하다.

 

 

- 목차

01. 언론이라는 말길과 정치

02. 민주적 말길과 정치의 확장

03. 시민정치의 온라인 말길

04. 디지털 시대의 불안한 말길

05. 과잉저널리즘 시대의 언론미학과 윤리

06. 미디어의 에로티시즘과 폭력

07. 통신기업의 기술정치

08. 디지털 미래파, 민주주의와 정치

09. 텔레비전과 예술

10.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의 망중립성의 사회적 가치와 정책

11. 공공커뮤니케이션의 위기, 위험한 정부에 대하여

12. 팬덤 정치와 진보정치

13. 미디어의 시간 경제학과 시간 정치학 그리고 공영방송

14. 디지털 미디어 급류와 지상파 방송의 미래

15. 편지라는 말길과 정치

16. 노동자의 말길과 정치미학

17. 텔레비전 작가에 대하여

18. 포털과 저널리즘 : 저널리즘의 개혁을 위한 포털 제자리 찾기

19. 빅데이터 시대의 프라이버시

20. 말길의 공공성,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