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홉 살 때 양손 한쪽 시력 잃어” 지뢰피해자 권금자 할머니

“전쟁은 절대 안 돼‥ 나 같은 사람들이 또 나오지 않았으면”

 

[와이뉴스]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지뢰매설밀도는 1제곱미터당 2.3개로 “세계최고”다. 한국전쟁 이후 60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지뢰사고가 발생해 지뢰 피해자는 1천여 명 이상이다. 국방부가 발표한 미확인 지뢰지대의 지뢰제거 소요시간은 489년이다.

 

앞선 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서 지뢰피해자 권금자 할머니를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 권금자 할머니 소개 및 지뢰 피해 상세 내용 설명 부탁.

1946년생 올해 76세다. 한국전쟁 후 아홉 살 때 개울에 걸레 빨러 갔다가 거기에 마땅한 돌이 없어 돌을 찾으러 (물 밑을) 더듬거리다가 다쳤다. 그게 지뢰인지도 몰랐다. 지금같이 광고가 되고 위험물이라는 것을 전달해줬으면 몰라도, 그때만 해도 60년 전이면 아이들은 모른다. 그게(지뢰가) 터져서 다쳤다. 양손을 잃었고 한쪽 눈이 실명됐다.

 

후에 마을 사람들에게 들으니 “펑!” 소리가 나면서 하얀 연기와 흙먼지가 올라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애들이 뛰어놀다 그걸(지뢰를) 또 건드렸나 보다” 했다고 한다. 피투성이가 돼 널브러졌고 개울에서 놀던 다른 아이들도 저만치 나가 쓰러져 있었다. 지금같이 휴대폰도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 헬리콥터가 왔고 싣고 갔다고 한다.

 

전쟁 와중에도 친정 사촌이 결혼한다고 해서 떡을 해서 부모님은 거길(잔칫집)을 갔다. 하룻밤 자고 온다고 하셔서 따라가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엄마는 한평생을 (속상해 하셨다).

 

 

■ 치료는 어떻게 진행하셨는지.

싣고 가서 동두천 노르웨이병원이라고 미군 병원에 (갔다). 한 달 보름 조금 넘어 퇴원했다. 그때 당시는 전쟁 후니까 환자들이 많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거나 사소한 접촉에도 팔 끝(절단한 부분)이 너무 시리고 아프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차라리 그 때(폭발사고 때) 죽었으면 생각한 적도 많다.

 

 

■ 지뢰 피해와 관련한 정부 지원은 있으신지.

몇 년 전 위로금이라고 한 번 받았다. 그때 온 거 보니까 무슨 공식이라고 그러던가, 우리 때는 최저생계비라는 것도 없었다. 남의 집 품앗이를 하면 사흘을 해줘야 보리쌀 한 되를 받았고 그런 시절에 거기에 맞춰서 보상을 해줬다. 그리고는 모른다.

 

 

■ 대한민국에 지뢰피해를 당한 사람이 많이 계시는지.

많다. 이번에 불발탄 조사한 거 보고 그러면 많다. 연천이나 북쪽에도 많고 파주, 철원, 양구 그런 데 쭉 있고 방송 이런 거 보면 후방(남쪽)에도 많은 것 같다.

 

 

■ 남북 관계 견해 및 지뢰 피해 관련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 보시는지.

제일 먼저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 지뢰피해자들은 다리나 팔, 눈을 잃은 중증환자다. 어떤 사람은 양쪽 다리가 없다.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다친 안보 피해자들이다.

 

남북관계 관련해서는, 우리는 대화와 협상을 하려 하는데 저쪽에서 전화 통화라든지 이런 것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통일이 안 되더라도 서로 왕래하고 지냈으면 한다. 서로 대화하고 살면 좋을 것 같다. 전쟁은 정말 없어야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이 또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는 없어야 한다.

북쪽에도 우리 같은 사람 있을 것이다. 지뢰피해자들을 돌봐 줬으면 한다.

 

 

■ 이 외 더 전하고 싶으신 말씀.

정부나 국방부 등 관계자분들, 지뢰피해자들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 말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 억울한 한평생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