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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평천하太平天下’ 가수 백성민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색으로 두터운 팬층
노력과 성실로 일궈온 노래 인생 40년
현 KTBN 아리랑 기획사 가수협회 회장

 

3차원 세계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소재에 바탕을 두고 공간적인 대상을 항구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 조각 건축물 등의 조형예술과 달리 음악은 일반적으로 시간 예술로 불린다. 음악의 소재인 소리의 순수성에 다시 시간적 성질을 가미했으며 발생적으로 봤을 때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삶에의 특정한 시공간을 떠올리고 때로 그때의 정서와 분위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혹은 미래의 어떤 순간을 형상화할 때 음악이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영어로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 등의 뜻을 함유하는 트로트(trot)는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 근래 이 트로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해 이를 계기로 가수의 꿈을 실현하려 문을 두드리는 사례도 느는 추세다. 앞선 7월 22일 오전 경기 시흥시 동서로 <빛을 담은 카페>에서 가수 백성민 씨를 만나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수 하신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후회하지 않아요. 힘들 때도 있었어요. 이쪽 일이 아시겠지만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럴 땐 힘들지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인터뷰 말미 가수 백성민 씨에게 물었을 때의 응답이다. 반세기 가까운 40년 세월 노래를 하며 어찌 시련이 없었겠는가. 그의 대답은 단호했고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노래를 향한 그의 열정과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면모라 하겠다.

 

최근 7집 ‘태평천하太平天下’로 활동하고 있는 트로트 가수 백성민. 그의 예인(藝人)으로서의 삶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부친은 악단장이었다. 고된 농사일에 흥겨움을 더해주는 악단이 나타나 보름씩 머무르면 마을 사람들은 그 기운으로 고단함을 잊었고 함께 손뼉 치고 노래하며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트로트 신동 가수 되다

어렸을 때부터 백성민은 동네서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다. 40년 차 가수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듯 그도 어릴 적 동리서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들었고 거주 면이나 군에서 개최되는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그 ‘끼’를 살려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향했고 이후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그간 라디오, TV, 유튜브, 인터넷, 방송활동 등 활발한 활동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 ‘40년 만의 외출’

살기 바빴고 바쁜 와중에 가수 활동을 하니 더욱 바빴다. 그 시간 동안 옆에서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와 함께 강릉 경포대로 향했다. 삶에의 피로를 잠시 잊고 두 손 꼭 잡고 오랜만에 바닷가를 거닐었다.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노래 ‘40년 만의 외출’에는 그때의 행복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간 발매한 30여 곡 중에 이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다.

 

 

중국 다롄 공연 ‘청학동 훈장나리’

가수 활동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해외 공연을 자주 가게 된다. 몇 년 전 중국 다롄시 공연은 그중 하나로 가장 인상에 남는다. 총 사흘 공연 일정으로 첫 번째 중국 가수들, 두 번째 일본 가수, 세 번째가 우리 대한민국 공연 순서였다. 무대에서 고 백남봉 선생의 ‘청학동 훈장나리’라는 곡을 부르고 내려오는데 사인을 청하는 백여 명의 팬분들 뵙고 가슴이 뭉클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기도 했고 정말 미묘한 감정들이 샘솟았다. 그 공연 기억이 아련하다. 해외에서 만난 동포분들은 가수로서 방문한 이에게 뭉클함을 일게 했고 아마 그분들도 그러했을 거라고 백성민은 생각한다. 세 시간여 사인을 마치고 다롄시장은 백성민에게 다음 공연을 재차 부탁했고 그 후 백성민은 수차례 다롄을 방문했다. 그를 계기로 중국의 한인회장단과 전화 연락은 빈번하다고. 당시 함께 방문한 가수는 주현미 씨, ‘바다새’ 등 십여 명과 사물놀이팀, 무용단 등이다.

 

 

삶의 애환을 담은 목소리 영혼을 달래는 음색

가수 백성민의 노래에는 깊이가 있다는 평이 있다. 삶의 애환을 담고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음색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비결은 백성민은 노래할 때 그 곡이 지닌 감성,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그를 마음에 담아 그를 바탕으로 애절한 감정을 잡고 부르는 노래, 그것이 듣는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백성민의 노래에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혼魂을 담아 노래하다

근래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폭증하며 트로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트로트에 진입하려는 이들에게 백성민은 피나는 노력만이 원하는 성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자주 방영되는 프로그램으로 가수 등용문이 넓어졌다고. 그만큼 많은 이가 가수가 되고자 문을 두드릴 것이나 모든 일이 그렇듯 열심히 노력하고 노래를 많이 불러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 가수 40년 차의 뼈 있는 조언이다.

 

 

관객의 환호가 바로 힘의 원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가수들의 경쟁도 엄청나다. 더구나 무명 가수들은 아직도 방송이나 행사장의 부름을 많이는 받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고. 그럼에도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장에서 관객의 박수와 따라 불러주시는 노래에 힘이 난다고 백성민은 전한다. 그럴 때면 관객과 함께 예술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된다고 겸손하게 전하는 그다.

 

 

늘 고마운 이들

지금의 가수 백성민이 있기까지 주위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40여 년 노래 활동에 많은 지인, 수많은 팬이 계시다고. 백성민은 그분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셨다고 여긴다고 전한다. 함께 노래 불렀던 나영이 누님, 가수 김미성님, 듀엣 활동을 했던 현아님, 김남훈 작곡가, 최진우님 등은 특히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가수의 길을 가며 제일 고마운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것.

 

 

‘태평천하’가 국민노래가 될 때까지

백성민은 코로나 사태도 힘든 현 상황에 시민분들의 안위가 염려된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자신의 노래 ‘태평천하’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또 항상 초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인터뷰 말미 전했다. 활동 중인 곡 ‘태평천하’가 국민노래가 될 때까지 말이다. 현재의 백성민이 있기까지 꽃길만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그는 성실히 가수의 길을 갈 것이고 많은 시민분을 찾아뵐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 가수 백성민의 노래가 방송이나 행사장에서 자주 나오면 또 더 감사할 것이라고 그는 전한다. 아울러 이웃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하게 노래할 것이라고 전한다.

 

/ 이영주 기자 인터뷰 진행 임헌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