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소시효 없는 ‘기억’

     - 편집국장 이영주

 

벌써 세 번째다. 광역자치단체장의 성 파문. 의혹이지만 이미 두 번의 적잖은 타격이 있었던 시민들로서는 피로감을 감출 수가 없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인권변호사로서,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 등 그가 보여온 소탈한 행보와 진보적 움직임은 대한민국에 분명 현격한 변화를 불러왔고 그렇기에 이번 비보가 더더욱이 슬프게 들리는 까닭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민주당 내에서의 입지나 국민적 지지도로나 진보의 큰 별이 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알려진 사실들을 종합하면 박 전 시장의 비서 A씨가 박 전 시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신체 접촉을 당했고 메신저로 부적절한 내용을 전송받았다는 내용으로 앞선 8일 경찰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9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잠적한 박 전 시장은 10일 새벽 북악산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 후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장으로 진행하는 것에 여론은 갈리었고 청와대 반대 청원이 15일 오후 57만을 넘어섰으나 결국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장을 치렀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비는 바이다.

 

그의 죽음은 무척 안타깝지만, 또 그의 지인과 지지자, 가족이 겪을 아픔도 매우 가슴이 아프지만 그의 자살 후 남은 과제는 분명 산적해 있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A씨는 약 4년간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A씨가 비서직으로 지원한 적이 없는데도 채용됐다는 점에서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A씨는 앞선 13일 기자회견에서 시장 비서직으로 지원한 적이 없고 다른 기관 근무 중 서울시청의 연락을 받고 면접을 봤다고 전한다.

 

부서 변경 또한 시장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전해진다. 본인 속옷 차림 사진 전송이나 늦은 밤 비밀 대화 요구, 음란 문자 발송 등 점점 가해 수위가 심각했고 부서 변동이 이뤄진 후에도 개인적 연락은 지속됐다고 전해진다. 이어 곧바로 보고하지 못한 것은 내부에 요청했으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한다거나 비서 업무는 보좌와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화하는 반응에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A씨는 주창하고 있다.

 

또한 ‘정치 꽃뱀’이라는 비난과 함께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신상털기 등 박 전 시장의 자살을 A씨 탓으로 돌리며 2차 피해를 주고 있다. 이는 성추문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으로 가해자로 의심받는 피의자가 아닌 수년 동안 피해를 봐온 피해자에게 또 한 번 화살을 돌리는 격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박 전 시장이 숨진 당일 성추행 피소 내용이 유출된 경위를 두고 이는 논란이다.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별보좌관이 고소 당일인 8일 박 전 시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정작 당사자는 ‘피소 사실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서울시청 내부자들로부터 자당에 들어온 제보라며 서울시장 비서실 차원에서 성추행 방조 또는 무마가 지속해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고 알려졌다. 주 원내대표는 서울시장 개인의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 이뤄짐과 동시에 시장 비서실 내나 유관 부서에서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하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가 발언한 대로 미래통합당으로의 제보가 사실이라면 이는 서울시 직원 누군가는 피해 사실이 있었다는 것과 함께 그 피해가 엄청난 것임을 인식하고 피해자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한 야권 인사의 추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경찰은 3대의 박 전 시장 휴대폰 통화내역을 분석한다고 밝혔고 박 전 시장이 실종된 당일인 9일 오전 공관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진 고한석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박 전 시장과의 마지막 통화를 당일 오후 1시 39분경으로 밝혔다.

 

현재 시점에서 진실은 아직 가려져 있다. 이러한 때에 위의 야권 인사의 발언은 더욱 무게감을 갖는다. “박 전 시장이 정말로 의혹에 그칠 일만을 한 것이라면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공소권은 사라졌지만 서울시와 직원들에게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이 수사를 통해 성추행 자체의 진상은 물론이고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시도가 있었다면 무엇을 은폐하려 했었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은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피의자가 사망하면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고 종결한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일방의 주장과 한정된 자료만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해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증거로 사실관계를 밝혀내도 기소하거나 처벌할 피의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박 전 시장의 사망과는 무관하게 인권 침해 여부 조사는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앞선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박 전 시장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도 1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묻혀서는 안 된다며 수사를 계속해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역 지자체장의 성 파문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이 있다. 스캔들 의혹으로 그쳤지만 못지않은 파문을 일으킨 이재명 경기지사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검찰은 이재명 지사와 영화배우 김부선 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는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16일 오후 이재명 지사는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점에 대한 신체검증을 마쳤다. 이 지사를 10여 분간 검진한 의료진은 녹취록에서 언급된 부위에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소(公訴)는 검사가 법원에 형사사건 관련 재판을 청구하는 신청을 이르는 것으로 공소권은 이러한 신청을 할 권리를 뜻한다. 공소시효(公訴時效)라는 용어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을 듯하다. 공소시효는 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검사의 공소권이 없어져 그 범죄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를 뜻한다.

 

한 시민은 박 전 시장의 자살을 두고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할 행동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닌 진실 규명 아니었을까. 침묵은 긍정이라는 속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박원순 전 시장을, 그에 따른 의혹을, 밝혀질 그의 진실을. 또한 이와 함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 파문을 일으킨 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때로 어느 우매한 위정가(爲政家)에 의해 인간 취급 못 받고 ‘개, 돼지’라 불리는 ‘백성’들이지만, 이제 우리 시민들의 기억력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공소시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