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자신의 일터로 여기며 성실히 일해온 40대 가장 고 문중원 기수. 8살 6살 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며 그가 남긴 유서 세 장에는 한국마사회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신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하기 위해 자필로 복사본을 남긴다고까지 적어놨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일곱 번째 죽음이다. 무엇이 누구보다 성실했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내막을 살펴봤다.
■ ‘피라미드 구조’의 경마장 치열한 경쟁 위주의 ‘선진경마제도’
고 문중원 기수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장 경마기수였다. 경마장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마사회, 마주-조교사-기수, 마필관리사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발급하고 마방(마구간)을 임대한다. 개인 마주는 말을 빌려주고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와 위탁계약을 맺는다. 조교사는 말을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고 말을 타는 기수와 계약을 맺는다. 조교사는 기수의 출전 선택권, 경주의 작전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기수는 조교사의 부당한 작전지시로 경주 도중 위험에 처하거나 경마 비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정황을 인지하면서도 조교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행여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말 훈련이나 출전에서 배제되고 이는 곧 생계 위협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문중원 기수는 자비를 들여 호주 영국 일본 등지에서 관련 자격을 취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이제 마방을 배정받으면 되겠지만 마방은 마사회 고위직과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문중원 기수는 유서에서 밝혔다. 또 부산경남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진경마제도’가 무한경쟁 시스템을 도입해 상금을 몰아주는 승자독식 구조를 지향하는 점이 경마장의 잔혹한 ‘피라미드 구조’를 공고히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 부당함을 호소하는 추모 문화제
문중원 기수의 부친 문군옥 씨와 유가족은 고 문중원 기수의 억울함을 알리고 마방 배정 관련 비리로 마사회를 고발하는 등 마사회의 부정함에 책임을 물었다. 부산경남경마장에서는 명확한 해답을 들을 수 없었다. 2019년 11월 29일 새벽 5시 20분 경마공원 기숙사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들의 비보를 듣고 문군옥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급기야 12월 27일 아들의 시신을 싣고 정부서울청사 옆 분향소를 마련해 추모문화제를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오체투지, 청와대 분수대 앞 108배 등으로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답변은 듣지 못한 상태다. 앞선 19일 경마 기수의 죽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해온 시민단체는 한국마사회의 불법 의혹을 감사해달라며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문중원 기수가 폭로한 비리를 포함해 마사회의 적폐 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시민 청구인단이 국민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 조사 결과’ 기다린다는 마사회
“한국마사회의 기본 입장은 경찰의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수사 결과가 나오면) 사과와 보상, 책임자 처벌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마사회는 앞선 1월 중순경 한 언론에 ‘문중원 기수 협상’과 관련해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한국마사회는 28일부터 오는 3월 8일까지 모든 경마장 경마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홍보실과 연락도 어려웠다. 대신 마사회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게재된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마사회 입장’을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접할 수 있었다. 마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최근 일부 언론에서 ‘한국 마사회의 경마정책과 운영의 불투명성’을 부각시켜 경마를 즐기시는 고객 여러분께 불편을 초래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부경 문중원 기수의 자살사고 이후 유족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민주노총은 현재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유족보상과 경마제도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주장은 마사회의 경쟁성 강화정책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며 언론은 마주, 조교사의 일탈과 마사대부제도의 불공정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마사회는 문중원 기수 사고 이후 즉시, 유서에 적시된 내용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하였고 수사결과에 따라 엄중조치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아울러 민주노총과는 11차례의 협의에 성실히 임하여 왔으며 유족 측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말관계자들에게는 적정 수준의 소득확보가 가능하면서도, 경쟁성 훼손으로 경마의 본질을 지나치게 해치거나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앞선 20일자로 밝혔다.
■ 철거된 분향소, “어쩔 수 없다”는 종로구청
정부서울청사 옆에 설치됐던 고 문중원 기수의 분향소는 27일 철거됐다. 서울 종로구청은 앞선 24일 행정대집행 영장을 통해 정부서울청사 옆 문중원 기수 분향소 등을 26일 오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으나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의 항의로 미뤘다가 이튿날인 27일 아침 집행했다. 행정대집행이 있기 전날 밤부터 노동, 시민사회 연대자들이 분향소를 에워싸고 지켜내고자 했으나 경찰, 공무원, 용역 인력이 투입돼 27일 오전 7시 30분경 강제 철거됐다.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시민대책위는 28일 “경찰의 제지로 기자회견조차 제지되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분향소 강제 철거)는 단지 종로구청의 잘못만으로 보기 어렵다. 서울시의 책임만으로도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중앙정부가 용인하지 않고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폭력적인 철거용역의 행위에 시정하라고 여기저기 비명과 함께 외쳤지만 경찰은 외면함과 더불어 오히려 그 폭력에 협조했다”며 “무엇보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고 문중원 기수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전달한 바 있었으나 90일 내내 정부는 외면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더니 코로나19를 핑계로, 서울시와 종로구청을 동원해 추모공간을 처참하게 철거하고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00일(오는 3월 7일) 전 고 문중원 기수를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중앙정부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주창했다.
종로구청은 28일 철거 입장 관련 질의에 “코로나19와 청와대 인근 집회 금지 등의 사회 분위기 등으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