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작품] 슬그머니


  △ 이보드레_도망_2018_MDF판에 혼합재료_17cmX29cm.jpg

                      슬그머니
                    <부제:슬슬 >


                                                                - 큐레이터 황은희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의 작품 속 인물은 소용돌이치며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피해 도망쳐나오는 것 같다.

작품 속 소용돌이는 점점 커져서 인물을 잠식해오고 우리의 삶 속에 불현듯 찾아오는 과제들 혹은 어려움들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자아내게 한다.

삶을 살다가보면 작품 속 인물처럼 직면하고 싶지않고 원하지 않지만 불현듯하게 직면하는 여러 순간들이 있다.
'어떤 여성이 좋은 자리라고 나간 자리 또는 좋은 기회라 하게 된 일에서 갑자기 안 좋은 상황과 어려움이 생기는 찰나가 있다. 그 때 나와야 할 때를 놓치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작가노트 중-


'슬그머니'는 슬슬의 옛말이다.
작가는 나에게 과분하게 넘치는 일을 만날 때 차라리 슬그머니 피하는 것에 질문을 야기한다. 피할 수 없을 때 괜한 욕심 때문에 정황상 못버리는 게 많다. 나의 어려움에 속는 것이다. 나한테 속지말라. 마음안에 내 스스로가 모든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은 관습이란 체제만을 강요하고 있는 주변 사회와 관계에의 저항이다. 소심한 인간의 자기 방어이자 이제, 체제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찰나를 피해 나온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이다. 관습과 생각 속에서 떨어져 나 자신을 지키고 나 자신에게 미칠 수 있는 좋지 않은 영향을 떨쳐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황과 상황상 관습을 따라야 한다 할지라도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의견은 소중하다. 관습과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가끔은 소용돌이치는 일들, 실체들과 떨어져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고, 주체를 가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남들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고 생각해야만 차별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우리의 현 모습을 비판해본다.

비겁하다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도망쳐 나오는 이보드레 작가의 「도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자세와 의식을 고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