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께서’가 나타났다!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께서’는 주격조사 ‘-이, -가’의 높임으로, 윗사람이나 존귀한 대상을 나타내는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에 붙어 그 대상을 높임과 동시에 그 대상이 문장의 주어가 되도록 하는 조사다.

 

최근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토론이 방송됐다. 여야를 대변하는 패널들이 출연해 각 당의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여당 패널이 발언 말미에 “○○○ 대통령께서 ~”라고 말했다. 야당 패널도 “○○○ 대통령께서 ~”라고 했다. 이어 진행자도 “이 문제는 ○○○ 대통령께서 ~”라고 말하며 해당 프로그램은 마무리됐다.

 

시간을 거슬러, 몇 년 전 학보사 간사를 맡았던 한 대학교의 일을 전한다. 학보사를 담당하는 교수님이 급하게 전화를 하셨다. 요는, 학내 교수의 코멘트를 첨입해야 하는데 학보사 기자들이 “○○ 교수님께서 ~”라는 표현에 극구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기사 작성 원칙에 따라 “○○ 교수가 ~”가 맞다는 것이다. 전화를 건 교수님은 “-님께서”까지도 괜찮은 것 아니냐 하셨고, 중재안으로 ‘-님’까지만 기재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해당 교수 목소리의 다급함으로 봐서, 갓 대학에 들어선* 기자들이 웬만큼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위 “-께서”와 관련해 현장에서 활동하는, 식견 있는 중견 기자 몇몇에 질문을 던졌다. 먼저 한 기자는 “일반적으로 방송 같은 경우 (보통) 진행자는 공식 직함 정도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방송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직함 뒤에 존칭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없다. 요즘 유튜브나 개인 방송을 많이 해서 그런 경계는 많이 사라지는 추세가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다른 한 기자 또한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 ‘-님’도 붙이지 않았고, ‘각하’가 아닌 게 어디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기자는 “(해당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국어학자는 아니기에 ‘-께서’의 정확한 쓰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사 작성에 ‘-께서’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지만 라디오 시사 토론 프로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다. 대중의 생각도 대체로 그러할 것 같다”고 답했다.

 

언론(言論)은 매체를 통해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사안과 관련해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일반용어다. 즉, 대중매체를 이용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을 보도, 논평, 해설하기 위해 정보와 뉴스를 취재하고 그를 규격적으로 요약해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 전반을 이르는 말이다.

 

매체(媒體 mass media)의 종류로는 인쇄매체로 신문, 잡지, 서적, 포스터, 전단 등이 있고 영상매체는 TV, 영화, 컴퓨터 등이 있으며 음성매체로는 라디오, 음반 등이 있고 뉴미디어로 인터넷, SNS, 스마트폰, 컴퓨터 등이 있다.

 

위 라디오 토론 방송에서, 패널들은 목소리나 어조로 판단했을 때 해당 대통령보다 연하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께서’라는 극존칭은 대통령과 당의 패널이라는 ‘권력관계’와 아울러, 나이의 권력관계까지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론학자의 견해는 어떠할까. 한 언론학자는 “기사든, 방송이든 멘트를 하는 것이든 대통령이긴 하지만 존칭을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언론은)독자나 시청자를 먼저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어 혹 위 사안이 당선 직후 ‘허니문’ 기간에 언론의 정권을 향한 ‘친교’ 표현으로 봐야 하는 건지에는 “과도한 존칭과 호칭은 독자나 시청자를 생각할 때 적당하지 않다. 그것이 허니문이라고 해도,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답했다.

 

이렇듯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중대한 의미를 두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민이 권력에 의해 대표자에게 권력을 위탁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을 조직하도록 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를 통해 대표자에게 권력을 신탁하는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 representative democracy)를 채택하는 대한민국에서, 위 사안은 그렇기에 더욱 고심해봐야 할 건이라고 본다.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그토록 견고하던 신분제도 함께 깨졌다. 현상과 본질, 위계질서, 나이의 권력관계 이것들에 관해 위 대학 학보사 기자들은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자본론>을 번역한 고 김수행 교수의 화폐에의 물신숭배 설명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금을 화폐로 사용하게 되자 사람들은 금이 ‘처음부터’ 모든 상품을 살 수 있는 사회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화폐에의 물신숭배’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금은 처음에는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금이 상품세계에서 화폐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화폐에의 물신숭배는 신하와 국왕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신하들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을 국왕으로 모시고 복종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국왕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국왕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한다.”

 

 

*학보사 기자들은 대체로 1, 2학년이 맡는다. 3, 4학년이 되면 졸업 논문 준비에 영어 시험 등 학업에 주력해야 하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