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단과 교단

 

 



                                       
                                              - 편집국장 이영주

한국 교회는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장로교, 감리교, 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교회) 등. 개신교(기독교)는 교단 분리의 주요 원인으로 일제강점 후 신사 참배, 한국 전쟁 후 공산주의에 우호 혹은 적대적 입장, 진보성 여부 등을 들고 있다.

부연하자면 공산주의 이해 부분은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가입의 문제가 있었다. WCC 안에 공산권 러시아 정교회 등 교회들이 존재했다. 그 교회들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 운동을 하다가 힘들게 살아남았으나 일부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갈라져 나왔다. 또 진보와 보수 부분은 성서 이해 차이가 그 근본 바탕에 깔린다. 본질에서는 신학적으로 다른 차원이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수많은 교단 분리 현상과 관련해 기독교 내부에서는 교황을 중심으로 교권이 확립돼 있는 카톨릭과 달리 자율적이고도 정통적 성서 해석의 역할을 들며 그 순기능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일부 개신교는 예수가 아닌 마리아 숭배와 예수가 아닌 인간에게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 등을 이유로 카톨릭을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에 카톨릭은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은 중보기도(이웃을 위한 기도)이며 죄를 신이 아닌 인간(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개신교의 경우 제도적으로 교황청의 신앙교리성과 같은 권위 있는 범세계적인 공신력을 가진 조직이나 기구가 없기 때문에 이단적인 가르침이나 신학적 문제의 최종 결정이 각 교단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 현장에서 이단 사역을 하는 이들에 의하면 100개 이상의 이단들이 활동하고 이에 속한 신자가 100만 명이 넘을 것이라 추산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경우 2012년에는 전·현직 대표회장 등 주요 간부들이 이단에 연루되거나 이단을 옹호한 것 등이 문제가 돼 38개의 소속 교단들이 한기총을 탈퇴해 ‘한국교회연합’을 새로 구성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장로회총회는 상시적으로 이단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는 않고 필요에 따라서 사안이 형성 되면 그 사안을 신학연구소에 넘겨서 연구소 검토 후 총회에 발표한다. 총회가 그것을 수용하면 전국 교회에 안내한다. 지켜보고 검토하며 상대적인 차이라면 이단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신학적 차이는 계속된 공부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카톨릭도 역시 이단 사이비 관련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단 또는 유사 종교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대응 방안 등을 연구한다.

일각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를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뿌리를 둔 종교라 한다. 기독교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종료라 부르며, 이슬람교는 자신들의 뿌리를 이스마엘(아브라함이 정부인인 사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삭보다 14년 앞서 여종인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서자)과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 두고, 유대교는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의 아버지가 이삭이고, 그 이삭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니 야곱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는 아브라함 및 신의 계약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교회(敎會)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때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로 결성된 가시적 단체로 그리스도교라 하면 기독교와 카톨릭을 아우른다.

개신교 일부 교단들은 신학적 차이나 견해의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 공존하고 어울리고 이단 규정을 해제한 경우도 있다.

취재 중 접한 카톨릭과 개신교 관계자는 모두 “교회는 하나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틀 안에서 다양성 속에 일치를 지향하고 인정하면 신학적 차이나 견해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로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어 제13편 <자로>에 따르면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으며 소인배는 어울리되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우러지며 화합하는 공자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