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싫다는 ‘나무’를 열 번이나 ‘찍으면’ 안 된다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몇 년 전, 저명한 철학자이자 비건(Vegan)인 한 교수가 미국에서 내한한 적이 있었다. 부부가 같이 왔었는데, 둘은 인간과 지구가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관한 강의를 했고, 이어 청아한 곡조의 피아노 연주,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됐다.

 

“흔히들 반려동물을 맞이할 때, 오로지 인간의 의사로 연이 정해지는데 이와 관련 동물들의 의사(意思)는 어떻게 반영돼야 한다고 보시나요?”

 

필자의 질문이었다. 애석하게도 직접 질문을 건네지 못한 탓에 번역과정에서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 정도로 전달이 된 듯하다. 묻고자 한 요지는, “인간과 한 동물이 만나 ‘반려(伴侶 짝이 되는 동무)’의 관계를 맺을 때 동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 보통인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였는데 말이다.

 

근래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토킹 범죄는 가히 온 국민을 공분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토킹(Stalking)이란, 타인의 의사에 반해 다양한 방법으로 타인에게 공포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주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의 스토킹 내용으로는, 자신이 알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하거나 만남이나 연락을 거부하는 연인의 집에 찾아가 이를 강요하는 행위 등이 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체로, 스토킹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계속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18083호 2021. 4. 20. 제정)’이 2021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관련 법률의 목적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와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절차를 규정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이다.

 

이 법에서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의 행위를 말한다.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 직장, 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 전화 팩스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 말 부호 음향 그림 영상 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물건등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물건등을 두는 행위 △주거등 또는 그 부근에 놓여 있는 물건등을 훼손하는 행위 등이다. 해당 범죄의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또 법원은 스토킹범죄의 원활한 조사 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서면경고나 접근금지 등의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여전히 우려는 남는다. 처벌 경고 등 응급조치에는 위반 시 처벌조항이 없고 경찰이 현장에서 시급할 경우 바로 취할 수 있는 100m 접근 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는 어기더라도 과태료 처분이 전부라는 점 등이다. 또한 스토킹 피해자 10명 중 8명은 “경찰이 도움 안 돼 신고하지 않는다”는 보도는 최근 경찰이 내놓는 갖가지 대책에도 시민의 경찰을 향한 불신과 더불어 경찰의 스토킹 인식을 보여주는 일면일 수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1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제출한 ‘스토킹 방지 입법 정책 연구’에서 연구팀은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피해를 신고할 경우 사건을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관이 관계에서 발생한 단순한 갈등, 끝난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시도 정도로 받아들여 신고 취소를 종용하거나 가해자를 편드는 말을 하는 등 2차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또한 일선 현장에서 사건을 접하는 경찰이 겪는 한계와 어려움을 보여준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스토킹범죄가 한때 연인이었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스토킹범죄가 또 다른 데이트 폭력을 양산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그 본래의 뜻과는 다소 멀어져, ‘싫다고 하는 여성도 계속된 구애를 통해 교제권을 획득할 수 있다’로 와전돼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음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를 남성의 ‘능력’ 혹은 ‘위업’ 정도로 여기며 주위에 과시하던 일도 종종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남성과 여성의 평등의식이 강화되고 이로써 점차 ‘개화(開化)’된 남성이 늘어나면서 위와 같은 사례는 보기 드물게 됐다고 사료된다.

 

말 그대로, “사랑이 계약도 아니고 한 사람이 끝나면 그 관계는 그대로 끝인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구애(求愛)는 그저 덧없는 미련과 집착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의지(Free Will 自由意志 개인의 자연적인 성향을 따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능력)를 지닌다. 이를 어기고 자신만의 감정을 위해 상대의 자유의지를 말살 혹은 묵인하는 것은 정서적 폭력이나 매한가지다.

 

흔히들, 다른 반려동물과는 달리 고양이(描)는 자신의 이른바 ‘집사’를 스스로 선택한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또한 대체로 이러한 고양이의 의사를 받아들여 준다. 오로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관점하에서 이 글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이 동물에게도 자신의 자유의지가 있을진대,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것이듯 상대의 마음은 상대의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원하는 것만큼 상대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온전한 그만의 자유(freedom 自由)인 것이다. 물론 마음은 쓰리고 얼마간 아플 수 있다. 어쩌면 그 아픔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남은 생이 고통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아예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설적(逆說的)으로 그렇기에 사랑이 숭고하고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살점이 잘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으로’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기에. 또 누군가는 말했다.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에게 상처 주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라고.

 

하니, 그 누구도 상대가 원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한, 싫다는 ‘나무’를 열 번이나 ‘찍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