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끝없는 유랑의 삶 고려인




 

 

                                                 - 편집국장 이영주


고려인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이주한 최초 시점은 1863년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 남우수리 지역에 한인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57년으로 이들은 조선에서 극도의 빈곤 기아 억압을 당하던 사람들이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와 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해체된 시점까지 나아가 현재까지 고려인들은 끝없는 유랑의 삶을 살고 있다.

<고려인 인구 이동과 경제환경-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을 보면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해간 최초 조선인들은 총 20가구로 이들은 연해주 찌진헤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해 1864년에는 뽀시에뜨 지역에 찌진헤 얀치헤 시지미 아지미 차삐고우 끄라부 후두바이 등 7개 한인촌락을 형성했다. 1865년 찌진헤에는 60여 가구 1866년에는 총 100여 가구의 한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러시아 극동지역 한인 이주는 급격히 확산됐다. 늘어나는 이주인들의 생존보장에 어려움을 느낀 러시아 정부는 조선 국경수비대장과 회담을 통해 조선 정부의 재이주자 수용 결론을 이끌어낸다. 고려인들은 조선으로의 재이주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렇게 척박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 정부의 강제이주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스탈린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고려인들의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간첩행위와 이의 위험성 대비’였다. 한 달 동안 20만 명이 넘는 고려인 강제 이주 정확한 사유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스탈린 정부는 전시상황 민족 간의 폭발적 위험 상황에서의 불가결한 조치라고 밝힌다. 부연하자면 소수민족들의 간첩 첩보 내부교란 적대적 배반적 행위 방지를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 인구 이동의 특징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의 유입현상이다. 또 과거 고려인 정착지였던 연해주로의 귀환과 더불어 러시아 남부지역으로의 이주가 활발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 교육 때문에 이주를 하며 적지 않은 수가 불안정한 법적 지위에 놓여 있으며 취업난을 겪고 있다.

지역별 고려인 직업 분포 현황을 보면 러시아의 경우 상업 및 자영업이 1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기타 18.4%를 제외하면 사무직과 주부가 각각 12.2%를 차지하며 농업은 11.4%다. 교육직의 비율은 4.7%로 공무원의 4%보다 높게 나타났다. 교육직 4.7%는 러시아 인구대비 고려인 인구 비율을 상회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교육직이 14.3%로 1위며 다음으로 사무직 11.4% 상업 및 자영업 9.8%를 기록한다<1996년 기준>.

고려인과 타민족 학력 수준을 비교해보면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학력수준은 러시아 대학졸업자는 40.4%로 러시아연방공화국 인구비례 대학졸업자의 전체 평균 10.5%를 훨씬 초과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에도 47.9%로 우즈베키스탄 전체 평균 9.2%를 넘는다. 카자흐스탄도 대동소이하며 이것은 1995년 대한민국 대학졸업자 20.6%보다도 높은 수치다. 국가 전체 인구 가운데 대학졸업자 비율은 카자흐스탄 9.9% 우크라이나 10.4%다.

고려인들은 극한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또 다른 터전을 찾아 나섰으며 가는 곳마다 정착해 그곳을 개척했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흙을 일궜으며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했고 훌륭히 사회적으로 진출했다.

현재 한국에서 그들의 입지는 넓지 않다. ‘외국인’으로 ‘이방인’으로 동포(同胞)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때가 지나 그들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을 때 그들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볼까. 실질적 섬나라인 한반도에 유라시아 시대가 열렸을 때 그 맨 앞에 설 자들은 누구겠는가. 예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누비던’ 고려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