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히포크라테스 선서 되새길 때

 - 편집국장 이영주

 

앞선 7월 23일 정부는 의대 정원 한시적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 개혁안을 발표했다. 현재 연간 3천 명가량 배출되는 의사를 2022학년도부터 해마다 400명 10년간 총 4천 명을 증원하겠다는 것이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이다. 장학금을 받고 의사가 된 이들 3천 명을 의료 취약 지역에 10년간 복무하게 한다는 것과 나머지 1천 명 중 50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 분야 인력으로, 다른 500명은 기초과학 및 제약 바이오 분야 연구 인력으로 충원할 계획이라는 사항도 포함된다.

 

의료계는 강력 반발했다. 반발은 파업으로 이어졌고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전공의 집단휴진과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 등의 현상도 발생했다.

 

위 정책 중 공공의대 선발에서 중요 요소는 지역 밀착성으로 공공의대 정원의 수배 정도인 후보군을 ‘해당 지역 출신자’로 뽑는 1단계 전형에 시도지사 등 지방정부 수장의 추천이 들어간다. 지난 수년 동안 공중보건 연구에서 반복 공개적으로 검토된 방안이라고.

 

이 때문일까. 의사 파업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올린 게시물에는 이런 질의가 올라온다.

 

‘문1)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a)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b)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문2) 만약 두 학생 중 나중에 의사가 되어 각각 다른 진단을 여러분께 내렸다면 다음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르겠습니까?

a)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 b)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

 

이 문제에 답을 하기에 망설일 독자께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학)의 이야기를 전한다. “의사의 능력이란 너무나 복합적이어서 의대 입학 성적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외과의사라면 어떤 수술을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좋을지 제한된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수술이나 중환자 치료의 경우 전공의 간호사 등 10명 정도의 팀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갖춰야 한다. 윤리적 태도도 중요하다. ‘힘들고 아프다’는 환자의 말을 불평불만으로 넘긴다면 기술이 뛰어난 의사라도 환자를 살리지 못할 수 있다. 그 모든 요소가 합해져서 괜찮은 의사가 된다.”

 

그렇다면 의대생 시절 의사들은 이 윤리 수업에 어떻게 임할까. 의료 파업을 반대한 현직 의사의 말은 이렇다. “사실 의대 내에도 예방의학이나 의료관리학, 의료윤리같이 의사와 사회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수업들이 있긴 한데 시간이 많이 배정돼 있지 않고 배당되는 학점도 낮다. 대부분의 수업시간은 질병과 치료법 등 의학지식을 익히는 것에 할애돼 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의학 지식만 외우다가 금요일 오후에 2시간짜리 의료윤리 수업은 가벼운 마음으로 듣게 된다.”

 

파업과 태업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명백한 노동자의 권리임이 틀림없다. 다만 시국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혼란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공교롭다. 이들의 파업으로 긴급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동안 의사의 노동강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래 진료 수 등을 고려한다면 의사의 파업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더구나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가 돼 원하지 않는 지역에 파견돼 일정 근무 기간을 채워야 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슈바이처의 현신이라 한들 어려운 일임이 자명할 것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과 늘어가는 노인인구, 도농 간 의료 불균형 등의 문제를 고려해볼 때 의사의 증원은 필요한 부분이다. 대규모 의료 파업은 20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의 구호는 의약분업 반대였다. 그 근저에는 의료보험 수가 및 전달 체계의 불합리성 때문에 이상한 진료형태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모든 내막을 파악하기 힘들었을 국민에게는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번 파업으로 의료 공백과 국민 불안은 극에 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의료 파업을 반대한 현직 의사는 정부의 개혁안이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었음에도 필수의료인력까지 파업에 동참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달았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소회도 남겼다.

 

“사실 아주 가난한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어렵다. 이과 1등에서 3천 등까지가 서울부터 제주 의대를 다 채우는 현실에서 가정 환경이나 보고 배운 것이 비슷한 학생들이 의대에 모일 수밖에 없다. 의대생이었던 20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도 서울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매년 10-20명 우리 학교에 진학해서 ‘어떻게 특정 아파트에서 이렇게 많이 올 수 있을까’ 신기했다.”

 

사람들이 의사를 존경하고 거의 신격화하는 이유는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치료하며 헌신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계층사다리의 도구로, 고소득과 명예가 보장되는 수단으로 의사라는 직책이 활용된다면 사람들의 존경도 그만큼 퇴색할 것이다. 붙임으로 의학의 아버지, 의성(醫聖)으로도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게재한다. 선서는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윤리적 지침으로 현대 의사들이 의사가 될 때 하는 선서로 알려져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 나의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