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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흰머리는 흰머리가 아니다


  - 편집국장 이영주

외국의 한 여성 셀럽(Celebrity)이 사진 촬영할 때의 일화다. 그녀는 촬영을 담당한 사진작가에게 자신의 흰머리와 주름을 편집으로 가리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자신의 얼굴 주름과 흰머리가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밝힌 것이다. 가까이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초로에 들어선 그 시인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기자님, 여기 이거 주름 좀 봐요. 전 이 주름이 참 좋아요”라고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많이 웃어서 예쁜 주름이 잡히게 하고 싶다고, 그것이 인생을 성실히 살아왔다는 증표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백색 머리카락이 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변화라는 것도 안타깝지만 자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젊고 생명력 있는 이미지를 추구하고 늙고 유약한 삶은 대체로 꺼린다.

하얀 머리칼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젊은 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라. 어떠했는가. 불확실한 미래에의 불안, 막연한 두려움, 사소한 일에 불끈했던 용감하기까지 했던 분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 느꼈던 마음속 서운함이 다들 있지 않은가. 이러한 힘겨운 감정들에서 탈출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시간이다. 그동안에 펼쳐왔을 뼈를 깎는 고귀한 노력까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지금 향유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 시간과 노력의 결합물이다. 이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누리는 안정적인 심적 물적 상태로 젊은 층이 갖기 힘든 요소일 것이다.

연장자들이 선대에서 받았던 것처럼 이것은 젊은 층에 미래에의 뜻깊은 조언과 격려에 진실함을 증가시키는 요건이 된다. 연장자가 겪었을 인생에서의 선험과 고뇌는 젊은 층에게 전해져 그들은 한결 나은 방향을 모색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새로이 인간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세습으로 이어진다.

누구도 인간이 왜 소멸하는지 명확하게 풀어내지는 못했다. 여기서 과학적 연구는 제외하기로 하자. 신체가 늙어 쇠약해지는 것은 분명 반기기 어려운 일일 것이나 나이가 들면서 기성세대가 할 일은 자신의 흰머리를 보며 사그라지는 젊음을 한탄하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남은 생애를 가치 있게 살고자 노력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연장자는 자신의 젊었을 때보다 비교적 무게감을 갖게 되고 이로써 어떠한 사건에 쉽게 흔들리거나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외부 사건에서도 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이 세상에 20-30대 젊은 층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러한 사고 실험은 연장자의 필요성을 한층 대두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지구인이 맨틀 속 핵을 평상시 인지하지 못하듯 사람들 대다수는 모발과 두피 안 더 깊이 존재하는 뇌에 보관된 고령자의 보석 같은 지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흰’은 ‘하얗다’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 외에 문법상 접두사로 ‘터무니없는’ 혹은 ‘되지 못한’의 뜻을 갖는다. 용례로 ‘흰소리’가 있다. 전하고자 하는 바는 흰머리도 분명 가치가 있으며 쓸데없이 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매일 아침 거울 속 빛나는 고 흰색 터럭을 빛의 속도로 뽑아내는 대신(어차피 뽑아도 그 자리에 동수로 또 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의 훈장이라고, 이제는 그때처럼 숨 가쁘게 뛰지 않아도 된다는 신의 위로로 받아들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