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아(男兒)의 일언은 중천금(重千金)이다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십여 년 전 펜기자 시절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추석 즈음이었는데 담당 지역의 국회의원이 명절을 맞아 시민 인사 겸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당일 다른 일정이 있어 현장에는 같은 사무실의 다른 피디님이 가셨다.

 

저녁 복귀 후 사무실에서, 취재 현장은 어땠는지 물었다. 그 피디님 왈, “그 의원 계란 맞았어요” 했다. 사유를 물으니, 해당 의원이 시장을 걷고 있었고 지역 시민이 갑자기 계란을 던져 의원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 의원은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피디님 왈, “그냥 가만히 있던데요” 했다.

 

나중 안 일인데, 당시에 계란을 던진 시민은 해당 국회의원의 상임위에서 처리해야 할 안건이 더딘 것에 불만이 있었고, 그 의원 또한 사안 해결을 위해 팔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지역구 시민들이 원하는 만큼의 속도는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해당 의원의 공과을 떠나,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하여 나름의 ‘세력’도 지닌 그가 ‘가만히 계란을 맞아 주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더불어 당시 그의 ‘담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만약 그것(계란을 맞고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정치적 전략이었을지라 하더라도 무척 현명했다고 판단 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학생과 교수, 문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시국선언을 하며 윤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언론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골프 라운딩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 휴대폰을 강탈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어 이들을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해 동행을 요구했다고.

 

전국언론노동조합 해당 지부의 성명에 따르면, 앞선 9일 해당 취재진은 윤 대통령이 골프를 친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포착해 ‘울타리 밖’에서 취재했다. 그러자 7-8명의 경호처 직원들이 취재진을 둘러싸고 휴대전화를 건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거부하자 전화기를 빼앗고 신원확인 및 소지품 검사, 제보자 색출 조사까지 했다고. 심지어 해당 태릉 군 골프장 앞은 평상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당일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취재진이 대통령 경호팀에게 소속을 분명히 밝히며 취재 중이라고 했음에도 취재 기자의 휴대폰을 빼앗은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가늠을 해보았을 때,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을 경호하는 이들의 경호능력은 그야말로 최고이며 최강일 것이다. 날카로운 눈썰미와 뛰어난 동체시력과 운동신경을 갖췄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들이 과연 기자들을 둘러싸기 전에 그들의 신분이 취재 중인 기자들임을 못 알아챘을까, 더욱이 기자들은 ‘무장을 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무기’라곤 현장을 기록할 펜과 녹음기, 카메라 정도가 전부다.

 

시민들을 대신해 현장을 취재하고 질문을 던지는 이러한 기자들을 열 명에 가까운 이들이 ‘둘러싸고’ 소지품을 빼앗는가. 이것이 소통하는 민주주의인가. 아울러, 제보자 보호(정체 누설 금지) 조항은 기자들에게 있어서는 독립운동 배후를 묻는 것과도 같은 금기 중의 금기 조항이다. 기자들에게 제보한 이들을 무관한 제3에게 밝힌다는 것은 기자 스스로 기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본인 스스로 신임할 수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꼴이다. 상황이 이리 엄중한데 제보자를 묻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이 사건과 위의 계란을 맞은 위의 의원의 일이 오버랩되며, 잠시 ‘행복회로’를 돌려 보기도 하였다. 만약, 윤 대통령이 골프를 치던 중 경호팀에 의해 당시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을 발견하였다. 그의 입장에서 고려해 보건대 물론 취재진이 조금은 껄끄러울 수도 있으나 윤 대통령이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를 건네며 “아이고, 기자님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피치 못하게 지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워낙 몸치라서요. 보기에 조금 거슬리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조금 살살 때려(기사의 비판 농도를 약하게) 주시죠. 허허”하며 호탕하게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그러한 배포 넘치는 대장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이것은 동화인가.

 

윤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골프를 쳤다는 것은, 미 대선 당선자와의 정치적 미팅을 위해, 소위 말하는 ‘국격’을 위해서였다고 천 번을 양보한다 치자. 다만 보도된 대로, 골프장의 우선 예약된 일정들에 차질을 주면서까지 골프를 쳐야 했었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인지하시다시피, 골프라는 스포츠가 근래 들어 많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골프는 여전히 ‘있는 자’들의 스포츠로 통용된다. 내지는 ‘가진 자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이들과 말을 섞을 수 있는 장소, 또는 격을 맞추어 즐기는 레저’ 정도로 인식된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보다 지금이 더 힘들고, 부자 감세로 국가 재정이 사경을 헤매며, 이에 의해 지방재정도 수렁이고, 보건 복지 노동 재정도 폭탄을 맞고’ 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대한민국은 하루에 42명이 자살한다는 최근의 통계가 나올 정도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며, 고시원에 홀로 살던 고령의 한 시민은 ‘더이상 아프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미래가 촉망됐던 여고생이 난데없이 시내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피살당했으며, 귀가하던 여성이 강간 살인미수로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살아났다. 성실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갑질’ 때문에 자살하고 일평생 열심히 일한 이들의 절반 가까이는 노년의 빈곤에 허덕인다. 뿐인가, 시민들은 치솟는 배춧값에 ‘김장 대란’을 겪고 수십만의 청년들은 ‘세상’이 두려워 문밖을 나서지 못하며, 많은 직장인이 상사의 ‘갑질’을 감내하며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선다.

 

이 와중에 실질적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골프는 무슨 골프란 말인가.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가 군 골프장에서 연습해 골프를 잘 치는 대통령을 훌륭하다 평할까, 아님 민생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대통령을 모습에 경의를 표할까. 궁금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당시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의 손바닥에 적힌 ‘왕(王)’ 자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지지자가 손바닥에 적어준 것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삼국지’ 동이전에 옛날 부여의 풍속에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어 오곡이 익지 않으면,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교체해야 한다거나 죽여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더불어 가뭄이 들면 왕은 스스로 끼니를 줄이거나 굶기를 자처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그 옛날 군주국가에서도 그저 자연현상(가뭄)일 뿐임에도 왕은 백성의 아픔에 동참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 공약마당에 게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의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전단형 선거공보에는 “윤석열은 앞 뒤가 같은 사람, 국민만 보고 가겠다, 국민과의 소통, 통합, 공정과 원칙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겠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같은 면 책자형 선거공보에는 “국민에게 충성한다,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라는 국민의 부름에 고심했다, 무거운 책임감,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을 지켜낼 사람, 국민의 삶을 따뜻하게 보살필 사람, 내일을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을 숙명으로 받들겠다”는 등의 내용이 탑재되어 있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기자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통령은 위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예부터 남아(男兒)의 일언(一言)은 중천금(重千金)이라 하였다. 이는 비단 생물학적 남성(male)의 말 한마디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말과 약속에 무게감을 가지고 임하라는 경각심 차원의 금언(金言)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모른 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오가 없다면 최고이겠으나, 그것이 안 되다면 최선을, 그조차도 안 된다면 본인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차선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차악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며, 최악은 본인의 잘못을 짚은 이들을 탄압하는 것이다. 선진적 민주사회에서 의견 대립과 공개적 토론(논의)의 장은 장려할 만한 진화의 ‘대화’이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취재 활동 및 언로(言路)가 막힌다는 것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 시점에서의 차선은 위 취재 기자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다.

 

만 8년도 지나지 않은 때에 같은 진영 대통령은 다수의 국민에 의해 그 자리에서 파면됐다. 뭐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그리 힘들지 않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은 제7조의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조항을 재차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 번 권력을 거머쥔 자는 계속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한다는 격언을 굳이 재차 꺼내지 않더라도, 지금이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기고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남아의 일언은 중천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