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웅’의 몰락


 - 편집국장 이영주


용기 있는 검사의 발언으로 검찰 내 성추행 관련 내부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미투(Me Too) 운동이라 불리며 사회 각계에서 들불 번지듯 일고 있다. 이 운동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국제기구 내에서의 성추행 파문이다. 영국의 한 언론은 2011년 강진 피해를 본 중남미 국가 아이티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옥스팜 직원들이 성매매 의혹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또 다른 영국 언론은 옥스팜 직원들이 2006년 아프리카 차드에서도 성매매 한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직원들이 원조를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유엔에서도 비슷한 폭로가 나왔다. 분쟁 지역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돈과 물건 등을 주면서 현지 여성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한 10대 소녀는 4달러(4천원) 혹은 한화 8백 원에 성을 유린당한 소녀도 있었다. 유엔은 2017년 10월부터 3달간 평화유지활동 중 40건의 성추행과 착취가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 가운데 절반은 10대 소녀였다.

유엔 산하 기관인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사무차장은 전 직장에서 동료 여직원들을 성희롱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사임했다. 그는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최고경영자 재직 시절 젊은 여성 동료들에게 성희롱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답하지 않으면 이메일을 보냈고 이메일에도 답하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사적인 대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문화 예술계에서도 성추행 파문은 끊이지 않는다.

수원시 상광교동 ‘문화향수의 집’에 거주했으며 문학계 큰 별로 불리던 K시인은 결국 수원을 떠났다. 이 시인은 지난해 한 지자체가 마련해준 자신의 거주지이자 문화의 공간에서 퇴출당할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 결국 주변 주민들 및 지자체 시민 문인들과 어우러지며 재거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그 논란의 중심에 문학계 거목이 있었던 것에는 틀림이 없다.

한동안 잠잠했던 그가 이제는 ‘성추행 파문’의 반열에 올라섰다. 문학계에서는 그의 ‘못된 손버릇과 몸버릇’을 고발하는 증언과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여론조사에서 답했다.

미투 운동은 문학계를 넘어 연극 영화계에서도 일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배우 연극인들이 줄줄이 성추행 관련 파문에 거론되고 있다. 일부는 공개 사과로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고 혹자는 단호히 부인하거나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교단에서 강의하거나 극단을 운영하고 문하생들을 지도하는 등 후학을 양성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 배우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하라는 지도 차원에서 가슴을 툭 쳤을 뿐인데 이를 성추행으로 오인한 친구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네티즌은 “온몸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지도했으면 온몸을 만졌을 뻔”이라고 댓글을 썼다.

이번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 대중이 선망하거나 동경, 존경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보며 시를 배우고 영화를 꿈꾸며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일반인들도 매한가지다. 대중교통 안이나, 길거리, 직장 등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모든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영웅’이다.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고 둘도 없는 배우자이며 멋진 오빠, 든든한 남동생이다. ‘영웅’의 귀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