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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승자다식 사회’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2023년 계묘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계묘년(癸卯年)은, 육십간지의 40번째로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는 ‘검은 토끼의 해’입니다. 토끼는 전통적으로 꾀가 많고 영민한 동물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설화 ‘토끼전’에서의 토끼는 위급한 상황에서 특유의 꾀와 재치로 이를 모면하지요. 보름달에서는 토끼가 계수나무 밑에서 절구를 찧는다고도 하는데, 이처럼 2023년에도 독자분들께 밝고 풍성한 날들만이 펼쳐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세상을 향한 깊이 있는 질문 와이뉴스는 2022년에도 독자 여러분들께서 궁금해 하실 만한 내용을 탐구하고 찾아내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해마다 발간하고 있는 창간 기념책자 <패러다임 21. vol 04>는 물론이고 와이뉴스가 제정한 무궁화대상 제5회 시상식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더불어서, 독자 여러분께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 경청하고 이를 오롯이 전달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어떠할까요. 국가지표체계(Kindicator)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명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살률이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 비교대상 국가들 중 최상위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라고 하고요,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이상 높고 나이가 들수록, 특히 70대 이상에서 높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자살사망자는 1만 3천352명으로 2020년보다 늘었다고 하네요.

 

또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2022.06.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우울위험군은 16.9%로 5배 증가, 자살생각률은 12.7%로 3배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지요.

 

반면 출생률은 어떠할까요. 통계청의 2021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2021년 0.81명으로 2020년 대비 0.03명 감소한 수치라고 하네요.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치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명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는 대한민국뿐이라고 합니다.

 

주택 문제는 좀 괜찮을까요. 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최대 주택 보유자의 주택 수는 1천806채라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의 ‘2021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전국의 자가 보유 가구는 전체 가구 중 60.65로 2020년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하며, 우리 국민이 생애 첫 ‘내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7년이 넘게 소요된다고 합니다. 수도권에서 주택을 사려면 10년간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부 모아야 가능하다고 하네요.

 

대학 1학년 때 한 교수님께서, 3월 첫 수업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1%다.”

 

한국에서도 이 현상(부의 쏠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2021년 종합부동산세의 결정세액 7조 2천681억 원 중 49.2%를 납세자 상위 1%가 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하네요. 한국은 이제 중산층이 완전히 사라진 빈익빈부익부 사회일까요.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2023년(단기檀紀 4423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 돈 없으면 살기 힘들고 못 배워도 살기 힘들고, 말 그대로 가진 것 없으면 제대로 목소리 한 번 크게 내기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내 새끼 내 자식은 잘 키워서 남 부럽지 않게 성공하기’를 바라지요. 그렇다면 ‘성공’은 조건은 무엇일까요. 높은 지위, 좋은 대학이요, 큰 회사, 넓은 집, 큰 차요?

 

헤아려보면, 참 신기한 일이지요. 지구상 80억 명(2021년 78.37억 명)에 가까운 인간들이 오로지 딱 하나 ‘위(돈 권력 명예 등)’만 바라보며(지향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요.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성적(成績 achievement) 때문에 아리따운 청소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일터에서는 갖가지 이유를 들며 상사에게 무시를 당하는 직장인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는 전문대학을 나온 부하 직원에게 “가방끈이 짧다”며 모욕을 준 일도 있었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방끈이 짧다’며 인격적 모독을 일삼으면서, 해당 부하 직원에게 상사는 어이하여 지상 최대 학벌이라 할 수 있는 하버드대학교 수준의, '완벽'에 가까운, ‘복종’과 ‘굴복’ 혹은 ‘존경’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 기업 가정 모두가 함께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기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葛藤 의견충돌)’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을 어떻게 현명하고 지혜롭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최근 MZ세대의 수평적 관계 인식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위계와 질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종종 있고요. 이에 앞서, 우리가 빼놓지 말고 유념해야 할 사항은, 선세대와 후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가 더욱 안정적이며 조화로운 광경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회가 됐든 가정이 됐든 단일적 강제와 일방적 ‘명령’은 다소 폭력적 관계 형성 방식에 속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나이와 성별, 직위를 초월해 ‘선(線)’을 지키는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사실,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게 되면 어떤 것이 과연 적정한 선(line)인지 판단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점을 한 번 기억해 보세요. ‘내가 편한 만큼 상대방은 불편하다’. 

 

존경하는 현자(賢者) 한 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

 

현재 시점에서 시점과 장소를 바꿔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잠시 시공간을 초월하여, 2천 내지 3천 년 후의 대한민국을 한 번 떠올려 볼까요. 그 때의 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모든 차별과 불공평, 꼼수와 편법이 사라진 공명정대하며 행복하기만 한 사회일까요, 아님 간혹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온통 회색빛의 사람이 동종인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의 사회에 더 가까운 모습일까요. 어떤 미래가 더 선명하게 와 닿으시나요.

 

현재처럼 그때에도 똑같이 상대의 학벌 재산 외모 집 등으로 갖은 차별 경시를 일삼으며 그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결과는 어떻게 도출될까요.

 

치열한 경쟁사회, 승리를 위해 상대를 짓밟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공존과 평화, 존중과 존경을 바라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지구 역사가 약 45억 년이라고 한다면, 이 지구상에 인류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약 300-35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평원은 300년에 걸친 개간 작업을 통해 농사에 적합한 땅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우리 한 개의 일생에서의 ‘혁신적 변화’라고 한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지구 전체 역사 대비 인류 역사로 산술한다면, 시간은 그리 길게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변화의 새싹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Copernicus的 轉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여 천문학의 대전환(大轉換)을 행한 것에 견주어, 칸트가 그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純粹理性批判)’ 중에서 스스로의 인식론을 특징지은 말로서, 인식(認識)은 대상(對象)에 주관(主觀)이 따르는 것으로써 성립된다고 하던 것을, 오히려 주관의 선천적 형식이 대상의 인식을 성립시킨다고 하였다는 것인데요.

 

우리도 이처럼 패러다임(paradigm)의 전환을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반드시 높은 지위(자리), 좋은 대학, 좋은 집, 비싼 차, 명품 옷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기존 인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모든 이가 평등하고 같은 인간이며 모두는 서로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으로요. 곧 이것이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필수 전제조건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말이지요. 우리가 이렇듯 ‘인식적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은, 언젠가 우리도 그러한 ‘처지’에 속하게 될 수도 있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로 섬(zero-sum)은 게임이나 경제 이론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제로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즉, 승자 독식(獨食)이 되는 것이지요. 승자와 패자의 실점 합이 제로가 되는 것, 승자가 10을 얻으면 패자가 10을 잃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이처럼 승자독식(勝者獨食) 사회라 해도 틀림이 없을 지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1천여 채의 집을 소유하지만 그 어느 누군가는 건강보험료를 자력으로 납부할 여력이 없어 결국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어느 작가의 글에서처럼, 삶이란 수평의 세상에서 수직으로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이유로, 일견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터입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러한 사회를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선세대로서의 의무 태만(부작위)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후세대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은 인생을 살 기회를 물려주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만큼은 자유와 행복, 인정과 존중, 이해와 배려가 넘치는 곳에서 살게 해줘야지요. 그러고 나서야, 대한민국의 출생률을 다시 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승자독식 사회(이긴 사람이 모두 갖는 사회)가 아닌 ‘승자다식’ 사회(이긴 사람이 조금 더 갖는 사회)로의 전환을 꾀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소견을 전해 올려 봅니다.

 

앞으로도 와이뉴스는 세상을 향해 진지한 고민을 던지며 우리 사회 긍정적 구성원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지키는 언론이 되기 위해 언제나 성실히 정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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