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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집념의 사나이’ 김동수 삼일공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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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이 확실한 학교 전국서 벤치마킹 오는 변화를 주도하는 학교

 

1903년 수원지역 최초의 근대식 학교, 수원시민들에 의해 지켜진 진정한 민족학교 삼일공업고등학교다. 김동수 교장은 1990년 3월 교사로 처음 부임해 30여 년을 삼일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 그의 전화번호 뒤 네 자리가 학교 명칭일 정도로 그의 학교에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2017년 수학교사로 재임하던 그가 교장이 되면서 삼일공교는 혁신적인 대변화를 맞게 된다. 우선 학점제 1차 연구학교를 신청해 선정되면서 경찰사무행정과와 3D융합콘텐츠과를 신설하게 된다. 출구전략을 위해 경찰사무행정과는 경찰공무원 시험 자격을 갖도록 형법, 경찰학,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기 위해 경기대학교 경찰행정학과와 교육협력협약을 했다. 3D융합콘텐츠과는 기존 발명과를 개편한 것으로 발명하는 창의적 인재들에게 4차 산업시대를 맞아 드론과 로봇, 가상현실 등을 융합한 학과를 창설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으로 2018년에는 많은 교사가 명예퇴직을 하기도 했다. 3년간 약 25명의 교사가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떠날 정도로 삼일공고의 개혁은 말 그대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김동수 교장은 교사로 처음 부임해 한 세대를 한 학교에 몸담으면서 ‘해양소년단’, ‘명예경찰’ 등의 동아리를 운영한 바 있고 이 동아리가 추후 ‘레저스포츠과’, ‘경찰사무행정과’로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2년 스승의날에는 생활지도분야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동수 교장의 혁신의 바람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 교장은 그와 교직원의 믿음을 바탕으로 개혁을 이끌어냈고 삼일공고는 출구전략이 확실한 학교, 전국에서 벤치마킹 오는 변화를 주도하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앞선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삼일공업고등학교를 찾아갔다.

 

 

■ 삼일공고 소개 부탁

삼일학교는 1903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구한말(舊韓末), 수원의 뜻있는 유지였던 임면수 선생, 이하영 목사 등이 모여 ‘어서어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모른다. 어서 배워서 알아야 한다. 국가 독립을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모토 아래 보시동교회(현 종로교회) 안에서 개교한 수원지역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다.

 

 

삼일학교를 설립한 분 가운데 임면수 선생은 삼일학교를 세운 다음, 온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가신 독립운동가다. 삼일학교는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라 해서 ‘민족학교’라고도 한다. 그 당시 보시동 교회(현 종로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농민들과 상인들이었고 학생들도 서당에 다닐 수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입학생은 여학생 3명, 남학생 11명, 총 14명이었고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유교사상 때문에 남학생은 보시동 교회 옆 초가에서 수업을 했으며 여학생은 교회 안에서 수업을 했다.

 

삼일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폐교 위기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수원의 유지들이 거금을 내놓기도 했고 종로교회 교인들도 헌금을 내는 등 폐교 위기에서 간신히 유지된, 수원 시민들이 지켜낸 진정한 민족학교라 할 수 있다.

 

1940년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조선총독부에서는 ‘삼일학교’가 ‘3.1운동’을 연상시킨다고 ‘팔달심상소학교’로 강제 개명을 당했고 해방 후 1946년 9월에 다시 ‘삼일’이라는 이름을 회복하는 등 삼일학교는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해온 ‘민족학교’다.

 

 

1945년 8월 15일 한국 침략 36년 만에 일본은 패망했고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됐다. 일본의 항복 선언을 들은 수원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삼일학교 교정으로 몰려들었다. 일본의 핍박에도 민족학교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굳세게 버틴 삼일학교였기에 수원 시민들에게는 해방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의미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마음에 부응하듯 삼일학교는 밤새 태극기를 만들어 운집한 시민들에게 하나씩 나눠줬고 수원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삼일학교 교정이 떠나가라 만세를 외쳤다. 몇몇 인사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한 ‘배달겨레 해방 경축 대회’를 열어 자축의 시간을 보내는 등 삼일학교는 광복의 기쁨을 수원 시민과 함께한 수원 시민의 학교였다.

 

 

■ 삼일공업고등학교 교사 소개

1990년 3월 삼일공고에 부임해 현재 30년 이상을 삼일공고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과 차별되는 특이한 점이 있다면 1992년 당시에는 거친 학생들이 삼일공고에 많이 들어왔고 그 학생들의 끓어오르는 혈기를 발산시켜주고자 ‘해양소년단’이라는 레저스포츠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 주말과 여름방학에는 바다나 강으로 래프팅을 하러 다녔고 겨울방학에는 스키장으로 스키를 타러 다녔다. 1990년 당시는 래프팅이나 스키는 매우 생소한 스포츠다. 졸업생들과 재미있는 추억들이 매우 많이 있다.

 

삼일공고에 있는 ‘레저스포츠과’는 특성화고 중 전국 최초로 교육부 승인은 받은 학과인데 그 탄생 배경이 ‘해양소년단’이다.

 

또 하나의 동아리는 1998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실에서 경찰청에 지시하기를 “날로 늘어나는 청소년 범죄를 줄여 보라”고 해서 경찰청에서는 ‘명예경찰’이라는 동아리를 1개 시·도에 1개 시범학교를 선정해 3개월간 운영했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지시로 삼일공고가 지정됐고 지도교사로 제가 지명됐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동아리라 어떤 매뉴얼이나 지침도 없었고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있듯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시작은 모범생 30명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30명, 총 60명을 데리고 경찰서 견학, 중앙경찰학교 견학, 1일 경찰 체험, 교도소 견학, 연무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등굣길 교통지도, 방과 후 우범지역 순찰, 경찰들과 축구 시합 등 매일 다양한 활동을 3개월간 시행하는 것이었다.

 

3개월 후 보고서를 경기도교육청과 수원중부경찰서에 제출한 후 해산하려 했으나 삼일공고는 자체적으로 계속 유지하자는 학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23년간 활동을 해왔으며 그 결과로 ‘경찰사무행정과’가 전국 최초로 교육부 승인을 받아 탄생하게 됐다.

 

위와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2012년 스승의날에는 생활지도분야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스승의날에 평교사가, 그것도 사립학교 평교사가 훈장을 받은 것은 최초라고 한다.

 

 

■ 학생 진로지도에 중점 두는 부분

삼일공고에는 10개의 다양한 학과가 있다. 예전에는 중화학분야, 중공업분야의 학과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고 더구나 4차산업이 대두되면서 학생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변했다. 획일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갖게 된 거다. 삼일공고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시대의 흐름에 맞는 10개의 학과를 만들었고 시설도 작은 전문대 규모로 확충했다.

 

졸업 후 취업을 하든 대학에 진학하든 학생들에게 맞는 출구전략을 세웠다. 예를 들면 화공과는 동남보건대와 MOU 체결을 했고 기계과와 전자과는 대림대학교, 사물인터넷과는 동양미래대학교, 그 외 학과는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와 MOU를 체결해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는 진로를 만들었다. 삼일공고의 가장 큰 장점은 출구전략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 교장의 지도에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고 성과를 거두고 계시다. 특별한 지도방침

동아리를 활성화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성교육’이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은 혈기가 왕성한 시기로 우리 학생들의 넘치는 ‘끼’와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학생부에 들어가면서 댄스동아리와 응원동아리, 밴드부를 만들었다. 그 동아리들이 지금까지 전통을 자랑하며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

 

이처럼 동아리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도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공립학교는 만들어 놔도 담당 선생님이 전근을 가면 흐지부지되는 경향도 있는 반면 삼일공고는 사립이다 보니 하나의 동아리를 20년 이상 지도하고 계신 선생님도 계시다. 이러한 삼일공고 울타리 안에서 우리 동아리 학생들이 마음껏 ‘끼와 재능’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 삼일공고는 이제 수원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빛내고 도약할 시기인데 계획이 있으시다면

수원지역에 사시는 연세 드신 분 중에서 ‘삼일공고’하면 안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현재는 많이 달라졌다. 삼일공고 선생님들은 과거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고 이제는 경기도를 넘어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찾아 오는 ‘변화를 주도하는 학교’로 변모했다. 올해도 서울뿐 아니라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에 있는 많은 학교와 기관들이 삼일공고를 방문했다. 이제는 혁신의 아이콘이 ‘삼일공고’가 됐고 혁신하기 위한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전국 최고라는 자부심이 생겼지만, 여기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혁신하고 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고 전국의 특성화고를 리드하는 학교로 자리매김을 하려고 한다.

 

 

■ 오늘날의 삼일공고 성과는 교장선생님은 물론 교사들의 노고가 크다고 보는데 격려 한말씀

교장이 되면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 행정실 직원들, 구내식당 여사님들, 본인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다. 힘들다는 것 알고 있다. 학교 교직원들이 믿고 따라와 준 것은 삼일공고의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했고 그런 열정과 소신을 믿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면서도 한마디 불평 없이 따라와 준 선생님들과 행정실 직원들, 구내식당 여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코로나가 2단계로 격상되고 그만큼 어려워진 상황이다. 학교 측 대응 방침은

코로나로 3분의 2만 등교하고 있다. 특성화 학교라서 3학년은 50%가 취업이 돼 나가 있는 상태이고 수시모집에도 합격이 돼 있는 상태라서 1.2학년만 등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문에서부터 2단계에 걸쳐서 발열체크를 한다.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돌려 보낸다. 모든 학교가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상황이다. 학교 안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학교문을 닫아야 하므로 모든 학교가 비상상황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 외부인 출입도 철저히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학생증을 가져야만 학교 내부도 통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저희를 믿어주시기 바란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들어 대한민국의 모든 초·중·고·대학교가 신입생 모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교들이 구조 조정하지 않으면 힘든 시기를 앞으로도 계속 겪어야 할 것이다. 또 구조 조정이 된다고 해도 학생과 학부모, 지역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학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정받는 학교로 거듭나야 되는 시기다. 삼일공고는 전국 최고의 명품학교로 자리매김을 하도록 모든 교직원이 최선을 다하겠다. 긴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공동취재 정흥교 수원인터넷뉴스 대표, 김영식 뉴스영 대표, 이영주 와이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