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 세상 모든 이가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체가 되지는 않듯이, 이 글의 사례 또한 모든 대학원생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대체로 많은 대학원의 지도교수들은 자신의 제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성심으로 지도할 것이라 믿는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사례는 모두 실제 사실이며 인물 또한 그러하다. 다만, 거론되는 이들의 사회적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모두 익명 처리한다. 이 글이 제언하는 내용들이 작금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더 큰 사건으로 확산 변질되기 이전에 대학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기를 진정으로 충언드리는 바이다.
#사례1_ 학부*
4학년, 강의에 배정되기 불과 얼마 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해당 교수는 어느 날 수업 시간 난데없이 비속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놀랄 만큼 충격적인 단어는 아니었으나 ‘신성한’ 배움의 장(場)에서는 다소 적합하지 않다 판단돼, 얼마 후 시행한 교수평가 요구사항 난에 비속어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
그다음 수업 시간, 그녀는 “내가 비속어를 사용했어요? 이 반에서 나한테 수업 시간에 비속어 사용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학기 기말고사 시간, 시험지를 들고 직접 시험감독을 들어온 그녀는 시험지를 교탁에 내려놓고 그 옆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껌을 씹기 시작했다, 딱딱 소리를 내며. 그 광경을 목격하는데 ‘저 여성이 과연 지식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가 맞나’ 싶었다. 교수의 과목 기말시험 시간이었고, 누구도 그녀에게 “교수님, 무척 송구하지만 껌을 소리 내지 말고 씹어 주실 수 있나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례2
그전, 한 직장에서 범인(凡人)치고는 꽤나 학식 교양 있어 보이는 이가 있어, “왜 대학원 가시지 않으셨어요? 교수님 하시면 딱일 것 같은데”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이 답,
“학부 마치고 대학원 가려는데 교수님이 00만 원 가져 와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가지 말아야겠다 그랬죠”라고 했다.
#사례3
지인과 대학원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교수님은 자기 제자한테 ‘○○대학교**가 학교냐’라고 말하던데요” 했다.
#사례4
지인의 전언, “아는 사람이 대학원 박사과정을 하다가 포기한 거야. 끝까지 하지 왜 포기했냐고 물어봤지. 답이 뭔지 알아. 그 (지도)교수가 그 사람한테 (성적)관계를 요구했대. 근데 그 교수도 남자야. 그래서 그만뒀대” 했다.
#사례5
모교 소재지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모교 근처에서 일하니까 교수님들도 자주 뵙고 좋겠다” 했더니, 그는 “교수들 다 쓰레기야”라고 말했다.
#사례6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지인과 대화 중, “어디 대학원 들어가세요? 전공 물어봐도 돼요?” 했더니, “○○대학원에 가요, 일반대학원은 노예던데요, 맨날 새벽에 들어오고” 했다.
위에서 제시한 사례들은 직간접 경험을 전한 것뿐이다. 이 외에도 대학원 교수와 관련된 ‘폐해’는 인터넷에 속속 등장한다. 유형은 주로 ‘돈, 성, 일’로 압축될 수 있다. 즉 교수가 학위논문 수여를 전제로 학생에게 돈을 요구한다거나, 성적 관계를 요구하거나(혹은 강제로 실행하거나), 학생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우다. 혹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실재(實在)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지는, 그러면서(학생에게 일을 시키면서) 교수가 나름으로는 미안해할 것이라고 판단하실 수도 있을지 모른다. 지도교수에게 각종 방식으로 노동력을 제공한 한 대학원생은 “미안해하기는커녕, 하지 않으면 불쾌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고 전했다. 또 “애초에 미안할 거면 안 하는 것이 맞다”고도 했다. 더불어 교수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경우, 해당 지도교수뿐 아니라 그 교수의 아는 교수, 또 그 아는 교수의 아는 교수에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학력의 ‘최고봉’ 대학원
학력사회로 일괄되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은 그야말로 학력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 공교육 과정의 경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2년 도합 20년의 과정 중에서 의무교육기간 중학교까지 9년을 제외하고, 고교과정과 대학과정을 거쳐 대학원에까지 진학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학력의 최고봉에 진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원은 특수대학원, 전문대학원(의전원, 법전원 등), 일반대학원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자신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고 통과시켜줄 지도교수를 접하는 곳은 대개의 경우 일반대학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교나 학과 지침에 따라 졸업논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논문 제출 외의 방법으로도 학위를 마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전해진다.
■ 40%에 다다르는 대학원생 자퇴율***
위(***)의 논문에 의하면, 대학정보공시(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0)에 따르면 최근 3년(2017-2019년)간 대학원 과정 중도탈락의 사유는 미복학(44,4%), 자퇴(38.1%), 미등록(14.8%) 등으로 파악된다.
또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이 지난 10년간 94.2%에서 81.5%로 크게 감소했고 대학원 과정 중도탈락율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5-6%대를 기록하고 있다(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2020).
한국의 대학원 교육은 고등교육 대중화 및 보편화와 함께 규모가 확대돼 대학원생 수가 1980년 33,939명에서 2019년 319,240명으로 증가했으나, 아직 대학원 교육의 질과 연구 여건 및 역량 수준은 미흡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된다. 이에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원 교육의 경쟁력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고 이후 연구 실적 및 교육 여건은 일부 개선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학원 교육의 보편화와 질 개선 노력에도 한국의 대학원 문화는 여전히 권위적, 비민주적이며 교육의 질도 낮다고 평가되며, 특히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간 위계적이고 경직된 관계는 문제로 지적된다.
■ 졸업논문 통과 대신 국시(國試)제도로 변경해야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원 지도교수는 학력이 곧 그 사람 능력의 전부로 평가되는 한국사회에서, 한 인생의 교육과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즉, 석사라면 18년, 박사라면 20년의 학력(學歷)에서 그 과정을 모두 ‘무사히(혹은 무난히)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증표를 제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석사나 박사학위 심사 과정에는 지도교수 외에 학내 다른 교수나 외부 교수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해당 학생의 통과에는 지도교수의 판단이 절대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이 교수의 ‘갑질’에 한도를 없애 주고 뫼비우스의 띠까지 부여되는 계기로 작동한다. 즉 교수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얼마나 언제까지 갑질을 한들 학생이 쉽게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을(실제로 해당 학생의 성향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지도교수일 것이다)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적당히 ‘수위’ 조절해가면서 갑질을 지속하는 것이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대학원생을 지치고 힘들게 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현재의 대학원은 보통, 석사 24학점 박사 36학점 정도의(학교마다 상이할 수 있음) 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이것을 코스웍(coursework 교과과정)이라고 한다. 필수인 종합시험과 함께 중간에 리포트(소논문) 제출과 중간 기말의 시험을 치를 수도 있다. 이렇게 정해진 학점을 받으면 ‘수료’ 상태가 되고, 졸업논문을 작성해 통과돼야 그제서야 ‘졸업’이 되는 것이다. 대개 석사논문은 80-100페이지, 박사는 200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이 논문을 심사해 통과해야만 진정한 졸업생이 될 수 있다.
졸업이 되는 요건을 현재의 ‘논문 통과’뿐 아니라, 여기에 더해 선택적으로, ‘국시’제도를 첨입하면 어떨까. 해당 전공과목의 시험을 국가에서 출제하고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통과(졸업)를 시켜주는 것이다. 시험 출제를 할 부서가 없다면, 해당 전공의 학회를 순환방식으로 채택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전국 일괄에 해당되도록 출제하고, 대학원 진학 전 해당 필드에서의 경험이 있는 직종(경찰, 노무사, 간호사 등)은 합격 점수를 보다 높게 책정한다거나, 사례(혹은 서술형)형 시험을 첨가해도 좋을 것이다. 채점은 국가에서 일괄 진행하는 방식이 추후 ‘잡음’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대학원의 경우 진학하는 연령대가 높을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고연령 학생을 고려해 정량 평가(시험)이 아닌 정성 평가라 할 수 있는 논문제도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이 더 ‘평등한’ 교육제도로 보인다.
■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 – 자신의 권리 찾기
혹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자신의 지도교수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받거나, 자해 자퇴 등을 고심하고 있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권한다.
대학원생 노조가 있다. 정식 명칭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이다. 상급단체는 민주노총 산하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으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Korean Graduate Employee Union)은 대학원생 인권침해와 노동권 착취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된 노동단체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원생노동조합이다.
대학원생 상당 수는 학내에서 조교, 프로젝트 연구원, 학회 간사, 대학 강사 등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실제로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전국 단위의 실태조사에서도 대학원생의 약 60%가 스스로를 학생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원생 노조는 이러한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해 설립됐으며 행정·교육·연구직에 종사하는 대학원생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익 보호 및 사회적 지위 향상과 교육권 보장, 고등교육의 공공성 및 대학사회의 민주화 실현, 자유롭고 평등한 연구공동체 건설, 학문연구의 발전 등을 활동 목적으로 한다.
이 곳에 SOS를 보낸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학내 인권센터나 학생상담소가 있으니 이를 적극 이용할 것을 권한다. 자신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본인이 묵과하면 또 다른 대학원생이(후배가 되겠지) 같은 고통을 고스란히 또 당할 수 있을 테니 선제적 대응차원에서라도 문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 같은 ‘노예’ 출신
위 논문에 따르면, 지도교수의 대학원생 지도유형과 대학원생의 학업중단 의사 간 관계가 전공계열별로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국내 재학 중인 대학원생 276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 분석한 결과, 인문사회계열의 지도유형은 ‘학문 및 정서적 지지’와 ‘억압 및 착취’ 유형, 자연공학계열의 지도유형은 ‘학문적 지지’, ‘정서적 지지’, ‘억압 및 착취’ 유형으로 도출됐다.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공학계열 모두 ‘억압 및 착취’ 유형이 대학원생의 학업 중단 의사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교수(指導敎授)는 대학에서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이나 논문에 대한 지도 등을 맡는 교수를 일컫는다. 일각에서는 이 지도교수와의 만남을 ‘결혼’이라고도 표현한다. 일단 만났으니(대학원에 들어왔으니) 릴레이션십(relationship 관계)은 지속해야겠고, 그 관계가 절대 ‘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끊을 수 없기에 도출된 어휘일 것으로 사료된다.
한 지도교수는 “나는 꼰대”라고 학생들에게 공표한 바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학 시절 일명 ‘라떼는’을 전했다고. 이는 ‘나는 꼰대이니 너희(학생들)가 맞춰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본인이 대학 때 ‘당했던’ 바를 그대로 자신의 학생들에게 ‘전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도 결국 학창시절에는 ‘노예’였다는 얘기가 될 것이고 상황이 이러하다면, 교수들에게 온갖 갑질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반론 한마디 ‘감히’ 꺼낼 수 없는 학생들은 자신의 교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 듯하다. “거 좀, 적당히 좀 합시다, 같은 노예 출신끼리.”
*학부 사례는 대학원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다소 벗어난 듯 생각될 수도 있으나, 대학 내 ‘교수’의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개한다.
**해당 학생의 출신 학부 대학교.
***전재은 전하람 이희영, “지도교수의 대학원생 지도 유형과 대학원생의 학업중단 의사: 전공계열별 분석”, 한국교육학연구 제27권 제1호, 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