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해방 후 속초는 38선 이북지역으로 북한에 편입돼 공산 치하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국군 북진과 함께 수복된 곳이다. 자유를 억압받고 살던 북한지역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피난을 내려왔고 이후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국군 북진 따라 북으로 가족과 이동하며 청초호 바닷가 모래톱에 정착하며 피난촌이 형성됐다. 갯배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청호동과 중앙동을 이어주는 도선갯배로, 일제 말 속초항이 개발되면서 당초 부월리2구(청호동)과 속진(중앙동)이 맞닿아 있던 것을 준설해 외항과 내항(청초호)이 통수되고 폭 92m의 수로가 생겼다. 속초읍에서 갯배 1척을 만들어 도선으로 이용했는데 당시 크기는 트럭 한 대와 우마차 한두 대를 실을 정도였다. 6.25전쟁으로 폐선되고 그 후 수복되면서 거룻배(종선)을 사용하게 됐다. 현재의 갯배는 1988년 낡은 목선에서 35인승 FRP선으로 바뀌었고 2017년 32인승 FRP선으로 교체됐다. -도선(渡船): 강이나 바다 등을 건너도록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 -거룻배: 사람이나 짐을 싣고 가까운 거리를 오가는 작은 배 -FRP선(Fiber Reinforced Plastic 섬유강화플라스틱): 섬
[와이뉴스] 한국건설산업노동조합이 안성시청 앞에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현수막에는 동원건설산업을 규탄하고 안성시청의 대응을 촉구하는 내용과 노동조합 측의 주장이 담겨 있다. -2026.08.27. 안성시청 앞
[와이뉴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해안경비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조국해방을 기뻐하며 남긴 친필 시를 화강암에 새겨 만든 비석이다. -2026.08.10. 경남 창원시 진해구 태평동 103
[와이뉴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도 한다. 발을 지압해 온 신체의 이상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2026.08.10. 진해 여좌천
[와이뉴스] 1973년 착공해 1974년 준공했으며 그 해 10월 3일 개관했다. 대지면적 30만 평, 건축면적 2만 9천 제곱미터(8,772.5평)이며 넓은 주차장도 구비했다. 전통생활모습을 총체적으로 재현한 야외민속박물관이자 국제적인 관광지로, 건립 초기부터 교육적 가치와 관광 요소의 결합을 염두에 둔 전통문화 테마파크다. 조선시대 마을은 각 지방에서 이건 및 복원한 실물 가옥으로 이뤄져 있으며 고증과 자문을 거쳐 사계절 변화에 따른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야외의 체험형 전시를 비롯해 전통 방식을 계승한 생활공예 시연, 절기별 세시풍속 행사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조선시대 가옥과 전통공방, 사계절 전통 농경 작업, 옹기전시관 및 세계민속관 등의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혼례식과 신명나는 줄타기 등이 열리는 공연장, 한약방과 장터 등의 먹거리 마당, 컨퍼런스와 세미나가 가능한 대강당 등이 있으며 산림욕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외 놀이기구와 눈썰매장 등의 놀이마을, 유모차 및 휠체어 대여소 등의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자료 참조: 용인특례시청, 한국민속촌 등 ※ 2025.06.03.
[와이뉴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초록빛 논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짙은 녹음과 고요한 정자가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이 잠시 더위를 잊게 한다. -2026.08.04. 경기 안성
[와이뉴스] 여름 저녁 하늘에 화산이 분화하는 듯한 형상의 구름이 떠올라 눈길을 끈다. 산 능선 위에서 치솟아 정상부에서 넓게 퍼진 모습이 화산 폭발 시 피어오르는 화산재 기둥을 연상하게 한다. -2026.08.05. 경기 안성
[와이뉴스] 본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저수지다. 저수지를 따라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타기 괜찮다.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고 전해진다. 물에 비친 노을과 풍경으로 출사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매년 여름이면 저수지 위로 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며,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휴식을 즐기는 수변 공간이다. 주변으로 카페, 융건릉, 용주사, 골프장, 승마클럽, 화성 마하리 백제 고분군, 조선 전기 대표 문신 서거정 선생 묘소 등이 위치한다. -자료 참조: 한국관광공사 등 ※ 2025.07.21.
[와이뉴스] 수원화성 북쪽 성밖에 있는 인공 연못으로, 용 龍과 연못 淵을 써서 '용이 머물거나 살았던 깊은 연못'을 뜻한다고 한다. 금강산 구룡연을 비롯해 전국 이름난 명소에 용연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였고 갖가지 전설이 있다. 화성의 용연은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 바위에서 유래했다. 용두바위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용두각'이라고도 불린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용연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로 쓸 만하다고 기록돼 있다. 용연 물이 넘치면 서쪽의 출수구를 통해 수원천으로 흘러나간다. 출수구에는 용이 되기 전 단계인 이무기상을 새겼다. 용연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은 화성 비경으로 꼽힌다. 인근으로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노닌다'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위치한다. 본래 군사적 감시를 위해 지어진 시설로 공식 명칭은 동북각루이며 독창적 건축미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됐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동북포루(각건대), 북암문, 북수문(화홍문), 평지북성 등이 부근에 위치한다. -자료 참조: 수원시 등 ※ 2026.01.27.
[와이뉴스] 통일신라시대 석상으로 석재는 화강암이며,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2호로 1985년 6월 28일 지정됐다. 높이 1.8미터로 불상 앞에는 넓은 자연석을 두고 불단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공양구(供養具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릴 때 음식이나 꽃, 차, 향 등을 담는 갖가지 그릇)를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현재까지도 마을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불상은 여래입상(如來立像 깨달음을 얻은 부처인 여래가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진 불상)으로 하반부가 매몰돼 있는데 단의 모습과 입상의 비례로 볼 때 불상의 3분의 1가량이 매몰된 것으로 본다. 얼굴을 비롯한 신체 각부의 마멸이 심해 정확한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불상 앞 막돌로 된 단은 불상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닌 후에 보존을 위해 다시 쌓은 듯하다고 추정한다. 불상의 민머리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肉髻 붓다의 정수리, 지혜를 상징)가 있고 두 귀는 턱 뒤까지 내려온 흔적이 있으며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三道 부처의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가 있는 듯하나 분명하지는 않다. 불상의 뒷면은 장식한 흔적이 없는 평면 상태이며 두꺼운 법의의 묵직한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