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인터뷰를 마치고


 

 

 

      
                                                      - 이영주 편집국장


그녀는 담담했다. 취재 전날부터 말씀을 들으며 행여나 그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면 어떡하나 조바심 내고 불안해했던 것이 기우라 판단될 만큼 그녀는 침착하고도 차분히 정제된 언어들을 풀어 놓았다.

15살 어린 나이였다. 수년 간의 강제 위안부 생활을 마치고 해방이 되고 나서도 그녀는 조국에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던 조국에 그녀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계시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을 방문한 건 13일 오전이었다. 나눔의 집은 사전 취재 인터뷰 요청을 통해 방문할 수 있었고 인터뷰 질의서를 작성하는 것조차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분들에게 죽기보다 끔찍했을 고통을 다시 끄집어내게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죄스럽고 송구했기 때문이다. 초점은 일본의 정식 사과 형식과 한일 위안부 협의에 관한 생각에 맞췄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평균 연령 93~94세로 88세가 최저 연령이시고 호적상 102세 되신 분이 최고령 할머니시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옥선 할머니(91세)를 제외한 나머지분들은 치매등으로 병석에 누워 계신 형편이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육성 증언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24년 후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 외교장관은 외안부 문제 합의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합의 당시 46명의 할머니들이 평균 연령 89세의 고령 상태로 생존해 계셨고 1년 6개월여가 흐른 현재는 38명이 생존해 계신다.

한국 정부는 1993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에게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2017년 4월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지원 대상자는 239명이다. 이 가운데 동원 시기 및 방법을 알 수 있는 사례는 180건으로 최초 동원은 1930년경 이뤄졌다.

여성가족부가 앞선 5월 발간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은 군의 사기 진작과 성병 간염, 군의 기밀 유출 방지, 일본군의 지배지 부녀자 강간(강간을 할 경우 강한 반일 의식으로 목숨을 걸고 보복을 하기 때문)을 막기 위해 위안부 제도를 도입했다. 위안부 도입은 1932년 제1차 상하이사변부터 1945년 일본 패전까지 전지(戰地)・점령지・ 식민지・일본(오키나와) 등에 위안소를 설치하면서 이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독등의 성병 검사는 위안부 소녀들을 대상으로만 이뤄졌으며 위안부단을 동원하고서도 강간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이옥선 할머니는 그래도 당신은 “죽지 않고 살아 이렇게 일본을 향해 사과하라는 목소리라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은 한을 품고 갔다고.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죽는 게 옳은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그 놈들이 좋아해도” 말이다. 그 한스러운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풀어낼 수 있을까.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이 타계한 경우 가족의 의사에 따라 장례와 차후 절차를 진행한다. 또 위령비와 추모관을 건립 중에 있다고도 밝혔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살해돼 버림 당한 슬픈 영혼, 임신한 배를 칼로 가르고 아이를 꺼낸 잔혹함, 탈출을 시도한 소녀를 죽여 인육을 강제로 먹인 일 등 위안부 피해자 관련 사례는 차마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산재한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앞선 2일 당시 후보자 신분으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고 “세부사항은 모르지만 피해자와 충분한 협의가 있었는지, 어르신들의 뜻을 존중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며 “시민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민주시민사회국가로 거듭날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은 고노 담화를 비롯한 정부 사회 차원의 사과와 '보상금'을 한국에 전달한 일이 있다. 여기에 할머니들의 의사가 중점적으로 반영됐는지가 중요하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나 할머니들의 증언이 덧없는 메아리로 그치지 않으려면 진정으로 할머니들이 원하는 사과와 진심 어린 일본 정부의 세계만방을 향한 역사적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