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형제복지원’

- ‘악마적 통제시스템이 작동했던 지옥의 수용소’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가는 길은 유난히 달이 밝았다. 그의 부친 부고(訃告)를 전해 받은 것은 2022년 4월 14일이었다. 빈소는 전라도 전주였다. 조의금만 전달할까 잠시 고민하다, 익일 일을 마치고 전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 고속도로를 비추는 길의 달빛은 정말 보기 드물게도 밝아, 인공 조명이 없어도 길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조문객들 편하게 오시라고 달을 비춰주시는가 보다’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장례식장은 고요했다. 고인의 빈소에서는 약간의 설전이 있는 듯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언쟁은 아니었고, 다만 한 대표에게 그네들의 그간의 설움과 하소연을 토해내는 듯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 유가족 대표를 만난 건, 수년 전이었다. 부산역 부근에서 우연히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는 모습을 목격한 후, 또 다른 자료를 통해 해당 사건의 실상을 더 자세히 접하게 됐고, 당사자를 만나 직접 이야기들 듣고 싶어 경로를 모색해 연락을 취했었다.

 

그는 어릴 적 형제복지원에 수용됐었다. 그 고통스런 기억은 그의 나머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그의 부친과 누이는 수년 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부친은 자식들을 맡아 준다는 국가를 믿고 한 대표와 누이를 형제복지원에 보낸 자괴감으로, 누이는 형제복지원에서의 각종 학대와 성적 유린의 충격으로 입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누나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그 와중에도 한 대표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에도 진학했다. 물론 대학 재학이 아니었던 시절에도 그는 충분히 명석하고 현명했다. 2018년 6월에는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제8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한 대표의 부친이 돌아가신 것이다. 때로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 있는 이의 고통도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한 대표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주었다. 그는 항상 만날 때마다 그랬다.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합리적이었다.

 

박숙경의 “해결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고통” 논문에서는 형제복지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형제육아원에서 시작한 형제복지원이 당시 정부의 사회통제적인 부랑인 정책에 편승해 불법적 수용과 감금 등 인권침해행위를 저지르던 중, 1975년 부산시와 체결한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계약과 국가가 시행한 내무부훈령 제 410호에 근거해 (중략) 거리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납치・수용해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등 각종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하다 1987년 초 사건화하면서 일부 실상이 드러났으나 당시 권력층과 부산시의 외압으로 그 진상과 책임규명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못한 사건을 말한다.*

 

해당 논문에 의하면, 형제복지원은 외부와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곳으로 수용기간 동안 외출, 전화, 면회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피해생존자들은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생활을 하였고, 피해생존자의 ‘56.4%는 수용 기간에 1회 이상 탈출을 시도’ 했다. 탈출 시도 경험이 있는 피해생존자들의 ‘평균 탈출횟수는 2.49회’였으며, 피해생존자의 ‘83.2%는 수용 기간에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목격하거나 사망 소식을 직접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피해생존자들은 수용 기간에 ‘여러 가지 인권침해 및 가혹 행위 피해를 경험’ 했는데, ‘특히 신체학대에 해당하는 가혹 행위의 경험률이 가장 높았으며, 심리적 학대에 해당하는 외부인과의 단절(89.3%), 말로 조롱, 모욕 등을 직접 겪은 경험(86.4%), 죽인다고 위협받은 경험(75.2%)’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또 치료를 받지 못하고(69.8%), 위생관리를 하지 못하는 경험(69.8%)을 포함한 기본권 박탈’을 경험했으며, ‘성 학대 위협(33.6%)과 성적 모욕(58.4%), 성추행(38.3%)과 강간(24.8%)’을 포함한 성 학대에 노출됐었다. 수용 기간 피해생존자들은 ‘가혹 행위로 평균적으로 4.7개 신체 부위에 손상이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으며, 피부손상에 해당하는 자상(67.2%)이 가장 많았고, 강제노역이나 신체적 학대로 머리(52.3%), 허리(40.6%) 등의 근골격계 손상과 화상(51.6%) 경험을 다소 높게 보고했다.

 

그들의 고통은 형제복지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복지원 해체(탈출) 후에도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는 드물었고, 안정된 교육과 주거를 누릴 수 없었다. 32.9%가 장애를 앓게 되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위 연구에 따르면, 피해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우간다 내전 피해자보다 높은 수준으로 전쟁 피해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고, 51.7%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이 21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26명에게 총 145억 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전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많이 늦었고, 피해생존자 ‘모두’가 아닌 일부 소수 대상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서라도 국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수용하는 측면에서는 의미를 둘 수 있겠다.

 

한종선 대표에 따르면, 이번에 26명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인정받은 피해자 400여 명 중 극히 일부라고 한다. 나머지 피해자들 중 일부는 민변을 통해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형제복지원은 3천146명 수용 가능한 대한민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으며, 복지원 내 아동 소대에는 450명이 분포했고 한 소대당 70~80명이 있었다.

 

위 연구는, 2020년 부산시가 실시한 형제복지원피해실태조사 자료를 토대로 재가피해생존자 21인의 심층인터뷰를 질적 분석했다. 해당 연구참여자 21명 중 4명을 제외한 모두가 10대에 형제복지원에 수용됐으며 그 중 가장 어린 나이는 당시 6세였고, 가장 길게 수용된 기간은 8년이었다. 이들 중 7명은 단속원에 의해, 나머지는 모두 경찰에 의해 수용됐다.

 

마지막으로, 위 연구에서 진행한 심층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구성한 주제를 전한다.

 

‘산산조각난 삶’, ‘끝나지 않은 폭력과 박탈’, ‘생생한 현재진행형 고통: 감각적 기억과 심상의 반복’, ‘나 자신을 읽어버림’, ‘성 학대의 잔해’, ‘사람 관계의 파괴’, ‘죽음만도 못한 삶’, ‘자책’, ‘의심증과 분노 폭발’, ‘교육기회 박탈과 후회감’, ‘사회적 배제와 낙인감’, ‘후유증으로 점철된 삶과 불안감’, ‘이어지는 노동 착취와 착취의 내재화’, ‘박탈의 사회경제적 여파’, ‘남겨진 가정의 파괴와 자책감’, ‘가족관계의 어려움과 억울함’, ‘빼앗긴 시간 동안 쌓인 고립과 외로움’, ‘재수용과 폭력의 반복’, ‘삶을 되찾고자 분투함’, ‘수용 경험의 여파로 인한 자기 불신과 두려움’.

 

 

*박숙경, “해결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고통”, 심리운동연구 제9권 제3호, 한독심리운동학회, 20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