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이것은 선동글이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익히 모두 알고 계시다시피, 앞선 12월 3일 밤 10시 23분께 대한민국 헌정사상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17번째 계엄령이자 13번째 비상계엄령 선포라고 합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익일인 4일 새벽 4시 30분경 계엄령을 발표했던 용산 대통령실은 앞선 새벽 1시 1분 국회 190명 의결에 따른 비상계엄령 해제 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수의 헌법학자와 법조인, 법률가들은 이번 계엄령이 헌법은 물론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초법적 선포이며 위법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어 정계와 다수의 시민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 있는 주체들을 적법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이는 아직 시작 단계이며 앞으로 많은 사안이 남아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높은 시민 의식은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병사에게 실탄 장착을 금하고 민간인 피해는 절대 안 된다고 명했던 특전사령관, 계엄 당일 밤 즉각 ‘항명’하며 사표를 제출한 전직 검사 출신 법무부 감찰관, 행여 시민이 다칠까 조심했던 일선 병사들, 그러한 병사들의 의중을 알아준 시민들, 무엇보다 담장을 넘어 계엄령 해제를 의결한 의원들 모두 민주주의를 지켜낸 주체들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개념화된 국회의원’은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엄 당시 서슴없이 담장을 넘어 의결을 해내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인식이 조금은, 아니 어쩌면 조금은 많이 희석되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유한 몫과 역할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감히 말씀 올리건대,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는 말 그대로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민중이 권력을 가지며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고 민중과 시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자 그러한 정치 사상이라고 합니다.
달리 해석하여 보자면, 이는 서로의 입장에서 반목하고 대립하며 때로는 크게 때로는 사소하게 각자의 입장을 전하고 논의하며 결의하고 전진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며칠 전 밤에 느닷없이 그 목숨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민분들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탄핵안 의결이 예정되어 있는 내일 밤, 그러니까 12월 7일 저녁을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보는 해석이 다수입니다. 그 전후로 2차 계엄이 발휘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군 일각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100%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2차 계엄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아니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만에 하나 2차 계엄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로 각자의 입장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4일 새벽, 계엄 해제 후 복귀하는 군인들에게 “우리 아들들 고생했어”라고 건네주는 따뜻한 한마디, 시민들이 다칠까 최대한 세심히 제어했던 군인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군인 덕분에 우리는 한 명의 인명사고 없이 ‘무사히’ 계엄을 해제시키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며칠이 고비라고 전망하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건대, 어쩌면 이러한 자유로운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클릭 한 번이면 전부 두절될 한낱 ‘통신’에 의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것이 앞서간 기우에 불과할 뿐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민족입니까. 그 수많은 외침에도 꿋꿋이 버티며, 36년간의 식민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독립을 준비해왔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어낸 민족 아니겠습니까. 3년 6개월간의 내전을 겪었으면서도 단 반 세기만에 세계 최고 반열의 선진국으로 우뚝 선 민족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코 거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유관순 누나부터 시작된 ‘학생들’에게 우리는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3일 밤 국회로 달려가 지각 있게 행동하신 모든 시민분 한 분 한 분들이 모두 이 나라 이 겨레 민주주의의 주인이며 주체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본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 미쳤다”고 외친다고 합니다. 이는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닌, “단 2시간만에 계엄이 해제되고 수많은 인파가 몰렸으면서도 무혈 속에서 사태가 진정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또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 땅에 무도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 훗날에 우리의 후손들이 “도대체 계엄이 뭐야? 그런 게 왜 일어나?”하고 물을 수 있도록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전직 기자이자 작가인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는 조선반도를 침입한 왜적이 조선인을 납치해 배에 태우고 전쟁을 벌여 같은 조선인끼리 서로 죽이게 만들어, 결국 남쪽 바다에 조선인들만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서로서로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극소수의 안위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그와 무관한 우리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초유의 사태는 절대 벌어지면 아니 될 일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사료됩니다.
우리가 살아내기에 바빠서,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기 버거워 잠시 잊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