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일선 학교 교사들의 인권은 현존하는가

  • 등록 2025.08.02 2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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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 어머니의 경우 자식의 탄생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 공간에서 부(夫)와 본인의 2세를 ‘배양’해낸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또한 이는 모두 자란 생명체(자식)를 본인의 신체 밖으로 나오게 하는 출산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혹독하고 또 한편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전 과정에 어머니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인지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인간이 감지 가능한 고통 중 상위에 랭크된다고 한다. 해외의 한 연구에서는 여성의 초산의 고통이 과거 형벌인 거열형과 맞먹을 정도라고 하니 그 고통은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다. 또한 출산 후에도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할 정도로 여성의 신체는 출산을 거치며 많은 ‘훼손’을 겪는다.

 

아버지라고 해서 자식을 키우는 일에 비중이 적은 것은 또 아니다. 대체로 가정에서 육아와 살림을 어머니가 맡을 동안 부(夫)는 대외 활동과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진다. 직장에서의 힘든 일과, 내키지 않는 인간관계까지 이들은 묵묵히 수행하며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측면이 있다. 남자들의 세계는 여성들의 사회와는 또 다른 고난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철저한 힘의 세계, 서열화된 관계 속에서 수직적인 역할 수행, ‘강자가 더 편하고 우월한 관계’ 등이 특히 그러할 것이다.

 

이에 따라 부와 모에게 본인들의 2세인 자식은 곧 그들의 분신이며 또 다른 자아이며 더 나아가서는 페르소나로까지 작용한다. 이에 ‘내 자녀를 욕하는 것은 곧 나를 욕보이는 것’이라는 틀이 성립되기도 한다. 특히나 자식을 본인의 소유물이나 본인 집안의 대를 잇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또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잇는 존재로 인식하며 그야말로 본인의 ‘뼈를 갈아 넣어’ 키우는 자식은 일반적으로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애착이 가는 제1의 존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는 자식이 맞이하는 첫 번째 사회이며 본인의 인생을 설계할 때 최우선이 되는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가정교육이 제일 첫 번째이며 중요하단 얘기다.

 

최근 공교육 학교 교사들의 고충이 자주 표면상에 오르며 회자되고 있다. 한 지자체에서는 “말려 죽이는 법을 안다”고 말하며 본인의 자녀 담임 교사에게 폭언을 한 공무원이 직위해제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학부모의 ‘자기 자식 감싸기’는 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일과 후 계속되는 학부모 민원에 하루종일 본인이 수업한 내용이 혹시 학부모 민원 사항에 저촉되는지 해독하기 위해 본인의 모든 수업을 녹취한다고 전해진다. 결국 해당 교사는 당해 반 담임직을 내려놓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또 같은 학교에서 다른 교사는 초등학생들에게 초코과자(ohyes)를 나눠준 일로 “불량식품을 줬다”는 학부모의 민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탕수육 찍먹(소스를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자녀에게 학교 급식에서는 일괄적으로 부먹(소스를 부어 먹는 것) 방식으로 제공했다며 앞으로 이를 지양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다고도 전해진다.

 

현대 대한민국 학생들의 지식 수준은 정말 뛰어나다.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본인의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혼신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의 학생들은 때로 영악하기까지 한 수준에 다다랐다. 즉, 본인이 조금만 ‘불리한’ 상황에 이르면 ‘선생님을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글을 올리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대체로 1970년대생들부터는 공감하리라 믿는다. 학창 시절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맞기도 했고, 뻑하면 각목으로 매로 주먹으로 발로 슬리퍼로 선생님들께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맞았다. 그러면서도 ‘다 나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겠지’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게 옳은 건 줄로만 알았을 수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상황이 너무 심해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한 선생님이 사라지는 일도 있기는 했었다.

 

‘예전에 우리가 맞았으니 지금 너희도 맞아라’, 이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때에 학생으로서 맞았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 성장해 현재의 학부모가 됐고 이 ‘분풀이’를 현재의 교사들에게 하고 있지는 혹시 아닌지 하는 것이다. 물론 연령대가 안 맞을 수도 있기는 하다. 허나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맞고 다녔지만 내 자식에게만큼은 절대 어떠한 티끌도 묻혀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발동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연이 겹쳐 발생한’ 자그마한 일에도 더욱 예민하고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교사의 ‘의도’이다. 현재 일선 교직에 선 교사들은 빠르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연령대이다. 이들은 젊은 층이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다. 즉,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본인의 상황을 이유로 ‘꼰대짓’을 대체로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세대라는 뜻이다. 현재 초등학교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교사’들은 본인들의 책무를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으며 본인들의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의 앞으로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작용할지 심도 있게 생각하리라고 본다. 또 다른 각도로는 본인이 그토록 힘들게 공부해 획득한 교사직인데 종당엔 그들에게 불리하게 될 게 뻔한, ‘일부러 아동을 학대’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아울러 교사는 서류 작업 등 사무 업무도 할당받겠지만, 대체로 말하는 것(수업)이 일의 주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본인의 하루 수업 중 목소리가 부분적으로 자칫 높지는 않았는지, 하여 본인의 사소한 발언이나 작은 행동 하나가 행여 아동학대에 해당되지는 않을지를 매일매일 우려하며 수업한다는 것은 해당 교사에게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하늘이며 태어나 첫 번째로 맞아 보고 배우는 ‘세상’이다. 올바르고 건전한 ‘세상’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인재가 성장함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설마 자녀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부디 없기를 바란다. 아이는 정확히 안다. 자신의 부모가 학부모(민원인)라는 본인의 위치를 활용하여 해당 교사를 ‘괴롭히는지’, 정당한 사유를 들어 개선되어야 할 부조리를 짚고 있는지를.

이영주 기자 why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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