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대상 판례: 대법원 1999.6.22. 선고 99다7046 판결* -사건 관계: 민사 손해배상 원 고: 1(피해자), 2(피해자의 부), 3(피해자의 처) 피 고: 보험사와 그 법률대리인(변호사) 청구내용: 사고 합의 당시 나타나지 않았던(예상 불가했던) 추가 후유증상에 대해 추가 배상요구(원고 1)-기각, 합의 당사자가 아니었던 가족의 배상요구(원고 2, 3)-인정. -판결 요지: 교통사고의 경우, 피해자 본인과는 별도로 그의 부모들도 그 사고로 말미암아 그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고유의 위자료청구권을 가진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 본인이 합의금을 수령하고 가해자측과 나머지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등의 약정을 맺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부모들이 합의 당사자인 피해자 본인과 가해자 사이에 합의가 성립되면 그들 자신은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아니하고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나타낸 바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범위 안에서 위 포기 등 약정의 효력이 당연히 고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는 그의 부모들에게까지 미친다고는 할 수 없다. → 자식이 교통사고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와이뉴스] 4.3사건의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숨지면서부터였다. 이후 남로당 주도의 총파업,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검속과 탄압, 남로단의 무장봉기, 계엄령 선포와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1954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며 끝을 맺었다고 한다.* 분명 아픈 역사이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다. "과거를 잊고 산다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제주4.3 아픈 역사 속에서도 (중략) 학살 현장을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고자 뜻을 모았다.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함이다." - 제주 성산읍 4.3희생자 유족회 추모글 중에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생산 수단 사유제를 통해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행해지는 경제체제를 자본주의(資本主義)라고 한다. 서양에서 자본주의 이전 체제를 봉건주의라고 하겠는데 봉건주의는 주군이 내린 토지를 매개로 군사와 조세에의 충성이 이뤄지던 체계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일부 계몽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보기에 불합리한 과거의 관습이나 사회현상’ 전부를 봉건제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요약하자면, 인류역사에서 현재까지 ‘발전된’ 경제체제의 한 형태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생활의 물질적 기초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과정이 자본제적 생산이라는 독자형태로 이뤄지는 사회이며, 기업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자본투자를 하는 사회로도 본다고 한다. 해당 견해에 따르면 이미 15, 16세기에 중상주의 시대부터를 상업자본주의 시대로 부른다고.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개념은 자본제 생산양식에 시각을 맞춘다는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부가가치 형태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이 사회적 생산의 주류를 이루는 기업사회라고 보는 것이라고.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조직은 자본주의 원칙에 따르며, 누가 어떠한 상품을 생산하든 국가, 그 외 어떤 단체도 간섭하지 않
[와이뉴스] 만석거(萬石渠 저수지)는 수원시 북문 밖 공설운동장 북쪽에 위치한다. 원래 둘레 1.28km 규모로 수구, 수갑 등의 당대 최신 기술이 반영된 수리시설이었다. 1795년(정조 19) 축조됐으며 현대에도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2006년 12월 26일 수원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됐다. 1997년 만석공원 조성으로 저수지의 일부가 매립돼 원래 규모보다는 축소됐다. 1794년 극심한 가뭄으로 정조는 농업개혁을 위한 혁신사업으로 수리시설 조성을 명했다. 1795년 윤2월 장안문 북쪽 황무지를 개간해 국영농장 둔전을 만들고 농업용수를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만석거 조성을 하게 된다. 축조 당시 연꽃을 심었으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남쪽 언덕에 영화정을 세웠다고 한다. 조기정방죽, 조귀정방죽, 조개정방죽, 일왕저수지, 북지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현재는 만석공원으로 시민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만석공원은 장안구 송죽동에 위치한 시민공원으로 만석거를 중심으로 한다. 분수대, 휴게 시설, 다목적 운동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축구장 등의 스포츠 공간, 야외음악당, 수원시립미술전시관 등이 있다. -자료참조: 지지씨, 경기도메모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와이뉴스] -해당 판례: 대법원 1972.3.31. 선고 72도64 판결 -판결 요지: 국민학교 교장이 도 교육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교과내용으로 되어 있는 꽂양귀비를 교과식물로 비치하기 위하여 양귀비 종자를 사서 교무실 앞 화단에 심은 것이라면 이는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로서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관련 법령: 형법 제16조 (법률의 착오)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주 문: 검사의 피고인 상고 기각(교장: 무죄, 종묘상등: 유죄) -이 유: 검사의 피고인 1에 대한 상고 이유에 관한 판단 원 판결은 피고인 1은 경남 (초등학교 이름 생략) 교장이다. 보건사회부장관 승인없이 1968.4.18. 부산 중구 남포동 소재 제일종묘상에서 마약의 원료가 되는 앵 속(일명 꽃 양귀비)종자 1봉지를 금10원에 매수했다. 그 후 위 학교 교정화단에 뿌려 앵 속 25본을 재배하였다는 사실은 인정이 된다. 이는 증거에 의하여 업무로 인한 행위내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와이뉴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토성으로 1981년 7월 16일 경기도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됐다. 해발 24m 낮은 구릉 정상부 중심으로 외곽을 감싸고 있는 평지성으로 평면 형태가 긴 사각형 모양이고, 성벽 중간 지점이 약간 돌출돼 있다. 성의 둘레는 337m이며 성벽 중심부 남북 길이는 116m, 동서 길이 81m, 내부 면적은 5,964㎡다. 축성 시기 관련해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삼국시대 축성설은 도적이 심해 양곡을 보관하기 위해 축성했다는 설과 신선 도승(道僧)이 거주하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전해온다고. 통일신라시대 축성설은 당나라 말기 한림학사 임팔급*이 간신의 참모를 당해 이를 피하고자 팽성으로 망명해 농성을 근거지로 삼았다는 견해다. 고려시대 축성설은 고려시대에 토성이 많이 축조된 점, 인근 처인성과 농성의 축성법 및 입지 조건이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고. 조선시대 축성설은 임진왜란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다. 2003년 조사 결과 동문지와 외황 하층에서 고려시대 토기와 기와, 분청사기 등이 출토돼 농성의 고려시대 축성설이 힘을 얻고 있다. 평지에 만든 성이지만 평상시에는 이용하지 않고 유사시 주
[와이뉴스] 최근 이상기후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2022년 극심한 가뭄으로 많은 농가에 피해가 발생했다. 노지 작물 재배 시 기후는 생산량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이에 와이뉴스는 "농촌이 답이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매월 지정 농가를 찾아가 해당 농가 작물의 작업 상황을 전하고, 랜선지주들을 모신다. 이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드론이 하늘을 수놓을 미래일수록 흙냄새와 식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농촌이 답이라는 취지다. -편집자 주- 배는 과실류 가운데 수출이 가장 많지만 2019년 재배면적이 9,615ha로 2000년 대비 63.3% 감소했다.** 배는 낙엽교목 식물로 배나무과속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지인 남방형 동양배와 중국이 원산지인 북방형 동양비, 유럽 및 서부 아시아가 원산지인 서양배로 구분된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 배 품종은 신고, 원황, 화산, 한아름 등이 있으며 일본에서 도입된 신고 품종이 재배 면적의 88%를 차지한다. 배는 수분함량이 85-88%이고 그 외 탄수화물, 당분, 단백질, 지방질, 섬유소 등을 함유한다.*** 동양배 신고는 아삭한 식감이며 높은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다. 나트륨, 칼륨, 칼슘, 마그네슘
[와이뉴스] 금광면 신양복리 복거(福巨) 마을의 옛 지명은 복호리(伏虎里)였다. 뒷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려 앉은 형세라 하여 호동(虎洞)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 복거리로 불렸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요로움으로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중심의 느티나무는 수령 400년이 넘는 보호수로 오랜 마을 역사를 말해주고, 가을이면 감나무 홍시가 시골 정취를 자아낸다. 안성시와 두리마을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시행한 '아름다운 미술마을 만들기'는 행정안전부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2007-2009)' 공모사업 일환으로 시행됐다. 꾸미기 주제는 마을 유래와 여유로운 삶에의 소망을 담아 '호랑이를 기다리며'로 하고 민화를 통해 소박함, 예술성 등을 마을 주민과 예술가, 지역 대학들과 협업으로 표현했다. -자료참조: 안성시 등 ※ 촬영: 2024.03.11.
[와이뉴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무인수납 영업소 현황(2023.7)은 전국 164개소에 달한다. 강원 23개소, 광주전남 24개소, 대구경북 21개소, 대전총남 23개소, 부산경남 16개소, 수도권 25개소, 전북 14개소, 충북 18개소 등이다. 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신용카드로 정산하는 경우,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일부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도로공사의 인원감축에 따라, 2012년부터 무인정산 시스템으로 전환한 결과라고 전해지는데, '사람'은 없고 '기계만'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실패'가 바닥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와이뉴스] 남양교회에서 파견된 김응태의 전도를 받은 정창하 등이 1905년 3월 10일 예배를 본 것을 계기로 창건됐다. 1907년 초가 15칸을 매입해 예배당으로 사용했고 1918년 동석기가 남양교회에 부임해 제암구역이 독립되면서 수촌교회는 제암교회와 같은 구역에 소속됐다. 제암교회와 함께 1919년 3·1운동 기간 중 일제에 피해를 당한 대표적 교회로, 1919년 4월 일제에 의해 교인이 학살되고 교당이 전소됐다. 당시 소실된 수촌교회 위치는 현재 교회 앞에 있는 개인주택 터로 추정된다. 1919년 전도사 김교철은 수촌교회 출신으로, 기독교인 안종후 홍원식과 협의 후 4월 3-4일 수촌리 교인과 주민을 인솔해 깃발을 앞세우고 장안면에서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사건 주모자가 수촌리 청년들이라고 생각한 일제는 4월 15일 새벽 보복에 나서 수촌리 가옥 42호 중 38호를 전소시켰고 많은 주민이 총검에 희생됐다. 또 수인이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고, 옥고를 치렀다. 방화로 전소된 예배당은 1922년 4월 아펜젤러와 노블의 지원을 받아 초가 8칸으로 신축됐으며 1932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1953년 3월 목조 예배당(20평)을 신축했고 1965년 6월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