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뉴스] 사례자 동생의 제보로 사연을 접하게 됐다. 사례자에게 또한 익명 게재 수락을 사전에 얻었다. 사례자의 시가 이야기는 상세히 들을 수 없었다. 혹시나 부연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연락 바란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60세가량의 이 여성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도회지로 취업을 나갔다. 섬유회사에서 십여 년을 근무하고 나와 다시 전자회사(공장)에 들어갔고 거기서 수년을 일하다 결혼을 했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당시 결혼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녀는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단행했다. 눈에 띄는 외모 덕에 접근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고 그녀는 ‘버팀목(울타리)가 필요해 결혼했다’고 한다.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고 힘든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녀의 시가는 시골이긴 하나 소위 말하는 ‘그 집 땅을 지나지 않고는 동네를 건널 수 없다’는 땅부잣집이었고 주요 성씨의 종가였다.
그녀는 맏며느리였다. 남편은 결혼 전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시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했다. 땅과 자산이 있었지만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한 시간여 버스를 타고 이고 가 시장에 나가 팔았다. 그런 시모에게 A씨는 언제나 성에 차지 않는 며느리였다.
남편은 A씨가 첫째 아이를 가진 6개월쯤에 A씨의 배를 발로 찼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유는 듣지 못했다.
A씨는 이른바 빠릿빠릿하지 못했다. 시모는 그런 A씨에게 늘 구박을 했다고 한다. A씨의 부모님은 그녀가 결혼한 후 십 년이 안 되어 연로해 돌아가셨다. A씨 모친이 작고하신 후에 A씨의 시모는 사돈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삼오제가 막 끝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난데없이 불려간 A씨의 친정식구들은 “얘(A씨)를 더 이상 데리고 살 수 없으니 데려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살림도 못 하고 육아도 형편없고 돈도 못 번다는 사유였다고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A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집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시가의 경시(輕視)는 A씨의 하나뿐인 친오빠 타계 후 더 심해졌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친정에서 A씨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서였을까. 그때까지 잔소리하고 구박하던 시모는 그녀의 팔을 때리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던졌다고 한다.
친정에서는 때마다 이혼을 독려했으나 A씨는 그러지 않았다. 자존심도 있었고 딱히 갈 곳이 없어서라고 했다고 한다.
A씨는 십여 년가량은 “죽고 싶다, 일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오래 살아서 뭐 하나”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도 끝내 이혼은 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봐서라도 살아야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결혼 전 착하고 예쁘고 밝았던 A씨는 결혼 후 생활에 찌든 모습만 남게 됐다. 그녀의 동생은 이혼 후 본인의 삶을 가꿔 보라고 누차 권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버텼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인생의 황혼인 육십이 가까워서야 시모의 잔소리와 남편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졌다고 한다. 그때 남편의 여동생, 소위 말해 시누이가 등장했다. 타 지역에서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처음엔 A씨에게 살가웠다. 그러다 앞서 말했듯 이른바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영악하지도 않은 A씨를 만만히 보기 시작했다. 재작년 여름 처음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어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폭력이 시작됐다. 시모와 남편은 방관했다. A씨에 따르면, 그녀가 시누이에게 맞을 때 시모는 시누이의 편을 들었고 남편은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함께 사는 직장 생활을 하는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말했지만 A씨의 자식들 또한 A씨를 방기했다.
결국 보다못한 동네 지인의 전화를 받은 친동생이 달려가 바로 A씨를 구해왔다. 구출 당시 A씨의 몸에는 미처 지워지지 않은 멍이 있었다. 동생의 신고로 경찰에 출석했지만 A씨는 언제 어떻게 맞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시누이는 경찰에 “살림이나 등에서 부딪혀 언쟁을 한 적은 있겠으나 때리지는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의 동생은 이렇게 술회했다.
“중학교 때 본 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내가 뭐가 되겠어, 내가 되는 일이 있겠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부모 잘못 만나서’라며 수시로 부모 원망도 했다. 그런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언니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삶을 개선해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해주기를 바라며 그냥 버티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삼십여 년이 흐른 것이다.”
그녀는 지금 동생이 어렵사리 마련해준 거처에서 지내며 청소일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왜 이혼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버티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다. 그렇게 벼텨서 얻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외손주를 봤다”고 말했다 한다. 결혼 전 전세 300만 원 단칸방에 살았던 그녀는 지금 보증금 200만 원에 월 40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지낸다. 30여 년을 돌아 결국 원래의 그녀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그녀는 이미 늙었고 총기는 매우 많이 흐려졌으며 그녀의 어깨는 결혼 전보다 더욱 굽었고 그녀가 목숨보다 아꼈던 그녀의 자식들은 “한 달에 십만 원과 용돈 조금”을 부쳐주기로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