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농가월령가’ 첫 일 년 촬영을 마치고

  • 등록 2025.01.02 20: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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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농가 사계절 간접 체험기

  -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사계절에 걸쳐 지역 내 배 농가 촬영을 마쳤다. 하여 과정을 정리해보는 글을 남기고자 한다.

 

3월 첫 촬영은 유인작업이었다. 유인작업은 말 그대로 과수의 가지를 유인한다는 뜻을 지닌다고 해석하는데, 뿌리에서부터 수직으로 뻗은 나뭇가지에서 처음에 나온 가지 위로 뻗은 가지를(↑→↑) 옆으로 누이는 작업이라 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얇고 연한 가지 외에 조금 두께가 있는 가지는 1/3 정도를 베어내고 눕힌 다음 이음 테이프를 두른다. 즉, 처음부터 배나무는 가지가 꺾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 번 작업 후 끝나는 것이 아니다. 6년 이상 유지된 유인된 가지는 12월 전정작업 시 제거된다. 고로, 내년 봄 다시 새로운 가지를 유인작업 해야 한다.

 

4월 작업은 인공수분이다.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작업인데 꽃가루를 농가에서 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한다. 4월의 배 농장은 천국 같다. 이는 영화나 소설의 배경으로 드물지 않게 등장할 만큼 환상적인 경관을 뽐내는데, 부서지는 햇살 아래에서 펼쳐지는 수분 작업 모습은 한 편의 그림 같았다.

 

이 작업 시 홍영익 대표(홍익농장)의 발과 손놀림이 무척 날렵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주인 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홍 대표는 답했다. 그 날 같이 작업했던 옆의 분보다 체감상 6-7배 정도 빨랐던 것 같다. 수분 작업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일정 기간을 두고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반복해 준다. 벌이 하던 일을, 인간이 하므로 그 완벽성에 꼼꼼함을 기해야 한다.

 

5월 작업은 열매솎기였다.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린 후 과실의 실함을 위해 솎아내는 작업을 하는데 한 꽃차례에서 한 개 내지 두 개 정도만 남긴 후 떼어내는 것이다. 보통 1번 3번 과실을 남긴다. 이 번호는 한 꽃차례에서 앞에 위치하는 것부터 매긴다. 즉, 작업하는 인간의 눈(하늘이 아닌 땅의 방향)의 위치에서 잘 보이는 열매라고 보면 된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농가였던 지라, 방문할 때쯤 되면 거짓말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취재하러 가기 전 운전을 하면서 지나치는 다른 농가 모습을 스윽 보고 ‘아 꽃이 피었구나. 농장도 피었으려나’ 이렇게 짐작하고 취재 시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있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았다. 그만큼 때에 맞춰 변해 있었다.

 

5월의 배 열매는 체리만 한 크기다. 아니면 약간 큰 앵두 열매 정도. 사실 더 정확히는 돌배나무 열매 정도라고 보면 된다. 튼실하고 녹색의 것이다. 그 작은 푸름 안에 생명력과 싱싱함을 폭발할 듯 머금었다.

 

6월의 작업은 봉지 씌우기이다. 봉지는 햇빛과 해충 등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이뤄진다. 보통 햇빛을 보아야지 열매에게 좋을 것 같지만, 너무 심한 햇빛을 쐬게 되면 열매는 탄다. 이를 일소 피해라고 하는데, 올해 유독 이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촬영 농가는 그렇지 않았고 작황도 예전보다 괜찮았다고 한다.

 

봉지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예전에는 주로 신문지를 활용했다고 한다. 그러다 과실 전용으로 제작된 종이 봉투를 사용하는데, 홍익농장의 경우에는 대미 수출용 과실을 수확하기 때문에 저장에 용이한 재질의 봉지를 사용했다. 수확 후 수출해 다시 저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배의 모습은 몇 달 동안 볼 수 없었다.

 

농가 촬영을 할 때 대체로 사전 취재를 하지 않은 채 갔는데, 이는 농사를 모르는 이가 섣불리 아는 체를 한다거나 자칫 생길지 모를 선입견을 막기 위해서였다. 해서 모든 기사는 취재 후 농장주의 설명과 더불어 주로 농촌진흥청이나 학술 논문 등을 참조해 작성했는데 홍 대표의 설명과 보충 자료들이 일치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아울러 홍익농장의 경우는 여러 농법 중 친환경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7월의 작업은 방제였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농사의 툴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듯했다. 그 즈음에서야 시중에 판매되는 과실이나 채소 등의 농작물은 농부의 손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깨달았다. 보통 농사는 흙과 물과 햇빛이 만들어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맞지만, 농사는 그야말로 농부의 정성이 90% 이상이었다.

 

앞서 4월의 인공수분도 비가 오면 다시 하고, 또 비가 오면 또 다시 한다. 아울러 촬영은 하지 않았지만, 이 때도 방제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각 시기에 유행하는 해충들이 있어 이를 막지 않으면 과실에 피해가 간다. 멀리는 비나 바람을 타고 2km까지 유충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농작물은 가히 농부의 작품이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또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다.

 

8월의 작업은 제초다. 홍익농장의 경우는 풀을 일부러 베지 않고 자라는 만큼 두었다가 베는 초생재배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는 풀 자체가 퇴비의 역할도 하고 이로써 토양보호, 햇빛 차단 등의 이점이 있다. 역시 연구하는 농자답게 과수와 토양에 이로운 방향으로 과실을 재배하고 있었다.

 

9월의 작업은 수확이었다. 아, 이 때의 감동이란! 드디어 몇 달 만에 배를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봉지 안에 있던 그 녀석이 너무 궁금했는데, 언젠가 만날 때를 대비해 참고 있었다.

 

홍 대표는 촬영이라고 아직 따지 않을 나무의(그 날 모두 작업하는 건 맞는데, 농장의 다른 쪽) 열매 몇 개를 쪼르르 열어 주었다. 몇 달 동안 감싸고 있던 봉지를 벗겨내 주었는데, 그 열매들이 마치 달(月 moon) 같았다. 유독 환한 밤하늘에 빨려 들어갈 듯 커다란 보름달. 무척 고혹적이었다. 과실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거 봐, 나 어때? 예쁘지 않아? 난 말야, 3월의 그 가지가 잘리는 아픔도 견뎌내고, 6·7월의 뜨거운 햇볕과 8월의 그 비를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이렇게 탐스러운 열매를 빚어낸 나 어때, 멋지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3월부터의 과정들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러한 감동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배는 그냥 배가 아니었다. 마치 단아하면서도 품격 있고, 속이 찬 재벌가의 40대 여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열매가 이겨낸 과정을 알기에 더욱, 무척 감격스러웠다.

 

10월의 작업은 선별 및 저장 작업이었다. 홍익농장은 모든 과정을 정석대로 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일소 피해가 있는 과실들은 모두 로터리처리(퇴비)를 했는데 그 양이 무려 6톤에 달했다. 홍익농장의 배들은 개당 무게가 1.7kg까지 나가는 매우 큰 열매도 있었는데 홍 대표는 이러한 큰 과실보다는 사과 정도의 400g 정도 되는 열매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 정도의 크기를 미국인들이 선호한다고. 홍익농가의 수출물량은 수확량의 50% 정도다.

 

홍 대표는 과실 저장을 위해 냉장고 청소는 물론 저장하는 상자 또한 깔끔히 닦아내고 온도도 철저하게 지켰다. 홍 대표를 봐오면서 가끔, ‘아 이래서 한 농가의 대표를 하는구나’ 할 만큼 지킬 사항을 확실하게 준수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특히 청결이나 과실 과수의 상태 보존 면에서는 단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듯 보였다. 현재 냉장 저장고의 온도는 0도라고 한다.

 

11월의 작업은 영양제 및 살충제 뿌리기다. 사실 이 작업은 수확을 모두 마친 후 나뭇잎이 있을 때 해야 해서, 10월 말에 이뤄졌다. 배의 잎은 열매의 수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영양제는 아미노산, 마그네슘, 칼륨 등을 사용한다고. 이 작업은 마치 여성의 피부 관리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것이 필수적인 이유는 새봄의 꽃눈이 피어날 때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니까 모든 작업은 하나의 궤를 이루고 각각의 작업들이 그 다음 해를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었다.

 

12월의 작업은 전정이었다. 전정은 나무의 가지나 줄기, 잎의 일부를 잘라내는 작업이며, 전지는 나무의 발육 및 양질의 열매를 위해 나뭇가지 일부를 잘라내는 가지치기로, 이들 과정이 모두 수목의 생장을 조정하는 방법의 일부라고 전해진다. 가지에 맺힌 꽃눈의 거리, 개수 및 가지와 가지의 거리, 일조량 등을 모두 헤아려 작업한다.

 

또 내년 1월은 설을 맞아 선별 및 포장 작업, 2월은 나머지 전지 전정 및 농장정리 작업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촬영은 12월로 마무리 되지만 홍익농가의 일 년은 또 새롭고 힘차게 시작될 것이다. 벌써부터 분주할 모습들이 눈에 그려진다.

 

홍익농장의 과수는 홍영익 대표와 동갑이다. 그의 선친께서 심으신 거라 하는데,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홍익농장의 배나무들은 포스가 있다. 마치 카리스마 있는 중년의 남성처럼, 본인의 길을 성실히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혹 기회가 되신다면, 가능하시다면 한 번쯤 방문하셔서 이 내용을 확인하신다면 좋겠다.

 

이렇게 일 년, 사계절의 취재를 모두 마쳤다. 처음 취재를 시작하면서 괜히 낯선 이의 방문이 농가에 피해가 가는 건 아닌지, 적잖이 우려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농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묻는 궁금한 사항들에 모두 답해주시고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신 홍영익 대표에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농사는 모른다. 그래서 취재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계절 한 농가의 시간을 간접 체험해보니 이것 하나는 알게 됐다. 모든 농작물은 농부 그 자신이라는 것. 그 전에는 ‘농작물은 농부의 자식과 같고, 농산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들은 말을 사용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농작물은 농부 그 자신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아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농부는 ‘도적적으로 해이하지도°’ 전혀 않고, 농작물을 그 어떤 대상보다도 아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아낀다는 것이, 농작물의 상품성 보존 차원도 물론 있겠으나, 해당 수확물을 입에 넣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농사는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홍 대표와의 촬영 약속은 우천으로 또 다른 기상상의 사유로 몇 번 미루고 변경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농사는 비단 사람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사람의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여, 하늘 아래 농사 짓는 이가 큰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나, 알게 되었다. 농자(農者)는 하늘이 허하여준 존재이며, 따라서 농자는 하늘이라는 것을.

 

 

°앞선 2024.12.19.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양곡관리법 등 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 및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영주 기자 why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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