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이영주
[와이뉴스]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2024 갑진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4년 갑진년은 육십간지의 41번째 해라고 합니다.
2023년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은 오늘의 새로운 태양 저편으로 넘겨 버리고, 힘차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2024년에도 와이뉴스는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준수하며 열린 언론, 부지런한 언론으로 거듭나도록 힘쓰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작금의 대한민국은 풀어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봅니다. 그 중 몇 가지를 곱아 보고자 합니다.
먼저 정치를 보자면, 현대 사회는 정치활동에 의해 공동체 시스템이 대체로 구축되지만 정치인들에게만 모든 권한이 부여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본주의이지만 대자본을 거느린 이들만이 삶을 향유하는 사회는 결코 균형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법치주의이지만 법으로만 해결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작 우리네 삶과 사회는 서로에 대한 양보와 배려, 존중과 타협으로 이뤄지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고 판단합니다. 법률가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회 또한 충분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언론에 의해 대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지만 언론인들에게만 정보전달권이 독점되는 것은 투명사회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 없다고 사료됩니다.
학력주의이지만 명문대 고학력자들만이 우리 사회 모든 성과물을 차지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 들지 못한 이들이 든 이들보다 수적으로 다수이고, 그러한 대다수의 고교 졸업생들은 본격적 인생의 '시작'이라 할 만한 스무 살 때부터 자신을 '성공하지 못한 자'라고 낙인찍으며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앞의 열 곳에 들어간 이들은 어떨까요. 모든 것에 성공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의 뜻대로 많은 것을 펼칠 수 있다고 여길까요, 아니면 죽을 듯 열심히 공부했으나 여전히 사회는 '기득권층'의 것이었다는 점을 실감하고 주식과 코인에 영혼을 끌어모을까요.
학부시절 정치철학 교수님께서는 "나이가 육십이 되면 박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싼 학비 들여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그간의 연륜과 경륜이 주는 '배움'이라는 게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공부가 아닌 분야에 재능을 가진 이들을 시들게 하는 '비뚤어진 학력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서울 중심 국가이지만, 비수도권 거주자들도 안락하고 편안한 기반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넓지 않은 국토에서 약 11%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지리학적으로 불균형하게 뻗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출퇴근 시 '지옥철'을 타고 서로를 '밟으며' 버텨내야 하는 도시인의 삶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요. '승리했다'는 그들만의 도취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빛나는 햇살 속에서 살랑거리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들풀 향기를 맡는 목가적 삶은 육체가 시들고, 머리가 히끗해질 노년으로 미뤄두고 그들의 젊음은 '견디는 현재'에 저당잡히는 것이 정말 맞을까요.
antitrust는 '독점금지'의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접두사 'anti-'는 '~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trust는 동일업종의 기업이 자본적으로 결합한 독점 형태라는 뜻을 지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신뢰'의 뜻을 갖는다고 합니다.
즉, 하나의 사조 내지는 직종(혹은 계층)에만 모든 영향력과 권리행사를 믿고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흔히 대한민국을 '갑과 을'의 사회라고 칭합니다. 우리는 과연 '을'일까요, '을'이기만 할까요. 앞서 언급드렸듯 '을' 다음으로도 '병정 무기경신 임계'라는 천간(天干)이 있습니다. 좋은 집안에 명문고·대 유학, 대기업 중형차 이름난 아파트 우월한 피지컬 착하고 괜찮은 반려자, 순종 반려동물, 두 명의 자녀, 든든한 지인, 너무 적거나 많지 않은 나이, 부동산과 주식, 코인까지 모두 갖추어야 갑이고 이 중 몇 가지가 빠지면 '을'이며, 또 어디서부터가 '병'의 시작일까요. 과연 저 열 단계에서 끝이 나기는 하는 것일까요. 혹시 각자의 잣대로만 헤아린다면 정말 지옥 끝까지 인간들은, 자신만의 층위를 나누고 그 경계선 밖에서 홀로 '안위'하며 사는 것은 아닐는지요.
낮은 출생률과 높은 자살률, 10분위로 치면 6할이 채 되지 않는 행복지수, 부의 양극화, 획일적 사고와 삶의 모습들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며 인간 중심만이 아닌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판단합니다.
모든 시민 한 명 한 명이 우리 사회 성원들을 서로 보듬고 응원하며 서로를 이끌어 주는 사회가 바람직하며 궁극적으로 이상적 민주주의에 가까이 가는 왕도일 것이라 사료됩니다.
독자 여러분,
"실패는 다시 하란 뜻"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묵고 시든 모든 것은 2024년의 희망 차고 새로운 기운에 흘려 보내시고, 떠오르는 갑진년 새로운 청룡의 해 기운으로 날마다 기운 차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그 옆에서 와이뉴스도 함께 걸으며, 이 시대 '필부필녀(匹婦筆女)'로서, 범인(凡人)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